“좋아하던 학원도 관둬”… 양육비 미지급에 고통받는 건 아이들

입력 2018-08-31 05:00
A씨 제공

“본인은 고급 외제차 몰고 다니면서 양육비 줄 돈은 없대요. 이제는 아이들 전화도 피합니다.”

남편과 이혼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어머니 A씨의 하소연이다. A씨는 결혼 생활 내내 남편 B씨로부터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 지난해 이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합의를 통해 양육비, 재산분할, 위자료 명목으로 22억이라는 돈을 받기로 했다. 지난 8월부터 2월까지 7개월간은 양육비가 꼬박꼬박 지급됐다. 그러나 목돈을 줘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B씨는 A씨의 전화는 물론, 아이들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오랫동안 양육비를 받지 못하게 되자 A씨와 아이들은 기본적인 생계유지조차 힘들어졌다. 결국 아이들은 다니던 학원도 그만뒀다.

양육비 미지급은 자녀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다.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동의 권리이자 자녀를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기반이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아무리 많은 양육비를 인정해 준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지급하지 않거나 집행 재산이 없으면 받아낼 수 없다는 민사채무의 고유한 결함이 있다. 한부모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려 수백만 원이라는 돈을 쓰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변호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도 양육비를 받지 못할 때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2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한 부모가족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홀로 키우는 한부모 가구는 171만여 가구로 전체의 9.4%를 차지한다. 이 중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가 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전혀 못 받았다고 답한 사람은 83% 정도다. 자녀를 혼자 키우는 5가구 중 4가구가 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셈이다.

이들이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라고 한다. 하지만 A씨의 전남편 B씨처럼 이혼 후 본인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양육비 문제는 아예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이들 대부분은 아이를 직접 키우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양육비에 대한 책임감이 점점 약해지면서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처음부터 양육비를 줄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A씨 제공

미국에서는 연방 보건복지부 산하의 ‘자녀 양육비 이행국’이 있고 각 주에도 이행기관이 있다. 각 주의 이행기관은 연방정부가 구축한 부모위치확인 서비스를 통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소재를 찾아낸다. 국세청과 연방수사국이 보유한 관련 정보까지 접속해서 소득을 파악해 원천징수하거나 재산을 찾아내 압류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숨은 부모를 찾을 수 없을 때는 각 주의 양육비 이행기관과 검찰청은 지명수배를 내린다.

우리나라 여성가족부 역시 자녀 양육비를 받는 일을 돕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3년 전에 만들었다. 그러나 재산을 숨기거나 주소를 옮겨가며 도망 다니면 양육비이행관리원도 양육비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이렇게 법에 기대기 어려우니 최근에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얼굴 및 이름 등 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양육비 안주는 아빠들(Bad Fathers)’이라는 이름의 이 사이트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여성단체에서 만든 것이다. 현재 16명의 남성의 사진 및 이름, 거주지 등이 공개돼 있다.

​‘양육비 안주는 아빠들’ 측은 “양육비를 주지않는 아빠들을 압박하기 위해 해당 사이트와 리스트를 만들었다”며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데 지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법원의 판결문’ ‘합의서’ 등을 통한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리스트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해당 사이트의 홍보를 맡고 있는 C씨는 지난 22일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이 사이트가 초상권 침해와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그것보다는 아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양육비를 주지 않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C씨는 “현행법상 상대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면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신청하면 되지만, 이행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1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C씨는 “만약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겨우 양육비를 받았다 하더라도 양육비가 또 미지급된다면 똑같은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한다”며 “그러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아빠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 압박을 가하는 지금의 방법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한 명의 아빠가 해당 사이트를 고발하겠다며 항의하고 있지만, 양육비를 지급하기 전까지는 사진 및 신상은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며 “고소 고발 및 민사상 손해배상은 모두 각오하고 있으며 이번 일을 계기로 그분이 자녀들에게 양육비를 지급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한부모 가족에게 지원되는 아동 양육비가 13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어난다. 지원받는 연령도 기존 14세에서 18세 미만으로 확대된다. 만 24세 이하 청소년이 부모일 경우에는 최대 35만원이 지원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양소영 변호사는 “미성년 자녀의 3년 치 양육비를 미리 법원에 선납하게 하거나 재산분할 금액 중 일부를 양육비로 미리 내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동아일보에 전했다. 또한 오는 9월 8일 4시 국회의사당 회의실에서는 ‘양육비 미지급 원인과 해결책’을 주제로 국회의원과 양육비 미지급 피해 여성들 간의 간담회가 이뤄질 예정이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