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가 막바지에 치달았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3 대표팀의 마지막 상대는 숙적 일본이다. 아시안게임 결승전 무대에 걸맞는 아시아 축구 최고의 라이벌 매치다.
한국과 일본, 이번 양 팀의 대결은 단순히 금메달이 걸린 결승전이란 것 이외의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바로 스포츠 스타들의 군 면제다. 아시안게임에서 종목별 우승자는 병역면제의 혜택을 얻을 수 있다. 특히 한국팀의 주장 손흥민은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년 7월 이후에 해외 무대에서 활동할 수 없다. 사실상 이번 아시안게임 우승이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선수들의 병역혜택 여부는 금메달보다 더한 관심사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혜택을 받는데 성공하면 남은 선수 커리어에만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비록 조별예선에서 말레이시아에게 일격을 당하긴 했지만 김학범호는 앞선 토너먼트 경기에서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막강 우승후보들을 모두 꺾어내며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의 돌풍까지 잠재우고 결승에 올랐다. 지난 15일(이하 한국시간) 바레인 전을 시작으로 보름간의 짧고 굵었던 여정 동안 한국은 월드컵에 이어 다시 한번 축구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지상파 3사가 방송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전인 29일 한국-베트남전의 시청률 합계는 42.9%를 기록했다. 역대 아시안게임 최고 수치로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을 넘어섰다. 독일전 승리로 잠시마나 시들었던 국가대표 경기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폭발적인 인기만큼이나 선수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선수들의 세레모니, 경기에서 보여주는 개인기 하나하나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황의조는 논란을 딛고 경이로운 활약을 펼치며 이번 아시안게임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6경기에 모두 선발출전, 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예약했다. 황의조 다음으로 득점이 많은 이들은 4골의 이와사키 유토(일본)와 자예드 알아메리(아랍에미리트)다. 그들이 득점왕을 차지하기 위해선 남은 한 경기에서 5골 이상을 넣어야 한다.
황의조는 당초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차출 시기가 명확히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땜빵’으로 선발됐다. 하지만 그간의 활약으로 황의조는 논란의 중심에 선 대체자원에서 대표팀의 보배로 발돋움했다. 불과 보름사이에 그를 향한 모두의 시선이 바뀌었다. 온갖 비난여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선발한 김학범 감독에게 건넨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런 황의조만큼이나 뜨거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가 바로 황희찬이다. 매 경기 논란의 중심에 서며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전 악수거부와 키르기스스탄전 사포 논란에 이어 8강전 윗옷을 벗는 세리머니까지. 그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날카롭기만 하다.
비단 그의 태도 문제 뿐만은 아니다. 그간 보여줬던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비난의 중심에 섰다. 체력적 문제도 없다. 아시안게임 차출을 앞두고 새로운 시즌 소속팀 잘츠부르크에서 단 한 경기도 소화하지 않았다. 대표팀 합류 직전까지 경기를 소화하고 온 손흥민과 황의조, 나상호와 이승우 등 다른 공격 자원보다 훨씬 체력적인 부분에서 앞서있다. 장시간 비행을 하긴 했지만 다른 선수들 역시 모두 똑같은 조건이다. 그를 향한 거센 비난의 시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아쉬운 경기력이었다.
◆ 고개 숙인 황희찬, 성숙하지 못했다
황희찬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태도는 분명 성숙하지 못했다. 그는 좀 더 자신에게 신중하고 팬들의 비판에 보다 현명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가슴에 새긴 태극마크가 가진 무게다. 자신감과 투지가 지나쳤다. 보다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조별예선 첫 경기인 바레인전에서 후반 교체출전을 하며 이승우와 전방에서 호흡을 맞췄다. 5-0으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의 끈질긴 수비에 별다른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했지만 종료 직전 멋진 프리킥 득점을 기록하며 마무리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전에선 최악의 부진을 이어갔다.
결국 FIFA(국제축구연맹)랭킹 171위의 말레이시아에게 굴욕적인 1대2 패배를 당하며 황희찬 역시 책임을 피해갈 수 없었다. FIFA랭킹은 A대표팀의 국제수준에 대한 지표로 U-23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해도 말레이시아전 패배는 용납되기 힘들었다. 김학범 감독의 전술적 만용과 선수들의 안일했던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 그야말로 ‘반둥 참사’였다.
경기력적인 부분으로 선수에게 지나친 책임을 물을 순 없는 부분이다. 누구나 컨디션에 따라 때로는 잘할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라운드 외적 요소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기가 끝난 후 결과에 상관없이 심판진, 상대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는 것은 축구계의 오랜 관례이자 페어플레이의 상징이다.
하지만 황희찬은 악수를 하지 않고 곧바로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이후 코칭스태프의 설득으로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응원해준 팬들에게 인사를 한 후 곧바로 라커룸으로 향했다. 황희찬은 악수를 거부한 이유로 ‘분노’를 꼽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나 주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비신사적인 행위에 대해 질책이 이어지자 자신의 SNS 계정까지 삭제했다. 개인적인 감정을 주체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키르기스스탄전에선 실패한 사포 기술이 화제가 됐다. 레인보우 플릭은 프로선수 레벨에선 성공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상대선수에게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어 일반적인 선수들은 잘 사용하진 않는 기술이다. 1점차 리드로 승리를 안심할 수 없는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이었기에 그와 같은 플레이에 대한 팬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선 이해할 수 없는 돌출 행동을 했다. 연장 후반, 3대 3 혈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페널티킥 결승골을 기록하며 상의를 벗고 카메라를 향해 오른손 검지를 치켜드는 ‘쉿’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선수들 사이에서 종종 나오는 세레머니다. 야유를 보냈던 관중석의 상대팀 팬들을 향하거나 자신을 질타했던 팬들과 여론들을 향한 제스처다. 상의 이름과 백넘버도 함께 들어보였다.
상의를 탈의하거나 옷에 특정 문구를 내보이는 골 세리머니는 경고에 해당하는 규정에 따라 곧바로 옐로카드까지 받았다. 키커로 나서는 선배 손흥민에게 “자신이 차겠다”며 먼저 나설 정도로 그간의 부진을 인한 설움을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욕이 지나쳤다. 경기 종료를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과한 세레머니를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당시 황희찬의 ‘쉿’은 간절한 마음으로 대표팀의 승리를 염원하던 팬들에게 반갑게 다가올 수 없었다. 결승골의 주인공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논란의 소용돌이로 걸어 들어갔다. 막대한 부담을 이겨내고 성공시킨 패널티킥 득점은 그러한 논란에 가려져 폄하되기까지 했다. 자신을 향한 대중들의 냉소에 올바른 방법으로 응답하지 못했다.
◆ 변하지 않은 한국축구 차세대스타, 황희찬의 미래
비록 논란은 있었지만 황희찬이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차세대 스타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동안 한국축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선수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주역으로 활약할 선수임엔 분명하다. 유럽 수비수들도 고전할 정도의 다부진 몸과 빠른 주력, 준수한 볼터치 능력과 수준 높은 드리블링까지 겸비했다. 고교리그 시절 포항제철고를 이끌며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걸맞게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다가올 결승전에서 일본을 꺾고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해 금메달을 목에 건다면 그러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진다.
황희찬은 29일 준결승전 베트남을 상대로 좌우 측면을 오가며 특유의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황소’라는 별명답게 성난 소 같았다. 적극적인 볼 경합과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황희찬이 창출해낸 기회는 이승우에게 이어졌다. 전반 7분, 길게 전달된 패스를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에서 이겨낸 뒤 황의조에게 전달했다. 이는 곧바로 이승우에게 연결되어 득점으로 기록됐다.
후반 10분 터진 쐐기골 때도 황희찬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었다. 이승우에게서 볼을 받아 투지 넘치는 돌파로 태클을 유도했고 혼전상황에서 흘러들어간 볼을 이승우가 재빠르게 달려들어 골로 연결했다. 이후 풀타임을 소화하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경기 종료를 앞두고 베트남의 막판 총공세가 펼쳐지는 순간에도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통해 그들의 반격에 맞섰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동아시아의 수비진들에게 유럽의 거친 수비수마저 튕겨버리는 황희찬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국을 상대로 경기 초반 라인을 끌어올리며 거센 압박으로 대응하는 것 역시 1대1 상황에서의 황희찬을 염두에 뒀다는 반증이다.
단점으로 지적되던 문전 앞 골 결정력은 아시안게임에서도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동안 수차례 도마 위에 오르며 어깨위에 쌓이게 된 무게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나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감이 볼을 소유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 상황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에서 자신만의 특화된 포지션을 찾지 못한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자카르타의 잔디 역시 한몫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기술적이고 탄탄한 황희찬의 볼터치가 투박하고 불안하다는 오해를 빚었다.
황희찬의 선수 커리어는 이제 막 시작 휘슬을 울렸다. 해진 마음을 보다 현명하게 다잡는 법, 대중과 언론에 신중하게 응답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결승전이 남아있다. 지난 비난 여론을 잠재울만한 기회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런 그에게 다가올 한일전은 마지막 시험대다.
올라있는 시험대에서 그가 가진 100%의 기량을 발휘하길 바란다. 대표팀의 무게를 감내하고 이겨낸다면 성장의 약이 될 수 있다. 이번 아시아게임 17일간의 여정은 황희찬의 길고 긴 축구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 될 것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