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인도네시아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 경기장 관중석에서 한국과 대만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예선전을 관전하던 중국 대표팀의 지도자들은 황재균의 수비에 감탄하는 기색이었다. 강습 타구의 바운드가 3루수 바로 앞에서 까다롭게 형성됐지만, 황재균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부드러운 글러브질로 공을 낚아올렸다. 강한 송구로 1루에서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자 제임스 존슨 중국 코치가 ‘나이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재균은 당초 야구 대표팀 명단에 있던 최정이 허벅지 부상을 입으면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게 됐다. KT위즈 소속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대표팀에 승선했다. 하지만 ‘대체선수’라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수비와 공격에서 맹활약을 해 주고 있다. 대체선수로 선발된 황재균과 이정후가 야구 대표팀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프로야구(MLB) 데뷔전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렸던 그가 대표팀에서 맡은 타순은 어울리지 않게 8번 타자다. 스스로도 대표팀에서 하위타선인 것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어느덧 대표팀 내에서 베테랑 축이 된 그는 타순에 구애받지 않고 연일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27일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는 연타석 홈런을, 28일 홍콩과의 경기에서는 9회초 좌중월 만루홈런을 쳤다. 한수 아래의 팀들을 상대로 쳐냈다 하지만 3홈런은 쉽게 거둘 수 있는 성적이 아니다.
9회초 만루홈런이 나온 타석에서 황재균은 애초 1루수 측 파울 플라이를 쳤었다. 포수와 1루수가 부딪히면서 공을 떨어뜨리자, 대표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은 “만루홈런”을 외쳤다. 황재균은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앞서 6회초의 삼진을 스스로 씻는 만루포이기도 했다. 그때에도 만루였는데, 황재균은 심판의 넓은 스트라이크 존 판단에 스탠딩 삼진으로 물러나며 아쉬워 했었다.
선동열 감독은 경기 이후 “중심타선이 ‘내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상당히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황재균의 타순을 조정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이 현장에서 나왔다. 장타를 펑펑 날리는 황재균의 컨디션이 가장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선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상의를 해볼 예정이다”고 답했다.
자카르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