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물 1호·2호,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웠어”… ‘단역배우 자매’ 9년 만에 장례식

입력 2018-08-28 16:47
JTBC '탐사코드J' 방송화면 캡처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단역배우 자매의 장례식이 9년여 만에 치러졌다. 2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에서 추모 장례식이 엄수됐다.

‘단역배우 자매 사건’은 지난 3월 두 자매의 어머니인 장연록씨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출연을 통해 재조명됐다. 2004년 당시 대학원생이던 A씨는 동생 B씨의 권유로 드라마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배우들을 관리하던 관계자 12명에게 지속해서 성폭력을 당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A씨에게 2차 피해가 이어졌다. 장씨에 따르면 경찰은 A씨에게 ‘가해자 성기를 그려와라’ ‘성행위를 묘사하라’는 발언을 했으며, ‘이건 사건이 안 되는데 어머니가 너무 여러 번 진정서를 넣어 기계적으로라도 하겠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가해자들의 협박도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2009년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동생 B씨도 세상을 등진 것으로 전해졌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뇌출혈로 두 달 뒤 숨졌다. 이후 장씨는 “가해자들이 반드시 업계에서 퇴출당하길 바란다”고 호소하며 “엄마이기 때문에 날마다 딸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죽기 1초 전까지 그리울 것 같다. 10년 전 일이지만 잊을 수 없다”고 CBS에 전했다.

JTBC '탐사코드J' 방송화면 캡처

이날 추모 장례식은 익명으로 받은 기부금과 여성가족부·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지원을 통해 열렸다. 장씨는 “청와대 국민 청원의 20만명 달성에 따라 꾸려진 경찰청 진상조사단에서 올해 5월 중간조사 결과를 들었다”며 “그동안 쓰러져 있느라 경황이 없어 엄마로서 장례식도 못 치러줬는데 중간조사 결과를 듣던 날 장례를 치러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장례식장에는 어머니 장씨가 딸들에게 쓴 편지가 놓였다. 편지에서 장씨는 “보물 1호, 2호 그렇게 불렀었지. 장례식을 치러주지 못해 무거운 맘으로 지냈는데 이제 그날이 왔구나”라며 “그동안 우리 딸들의 엄마여서 행복했고,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웠고 감사했다. 편히 천국에서 잘 지내렴. 훗날 엄마 만나는 날 늙었다고 못 알아보면 안 돼. 잘 가라”라고 적었다.

이날 오후 12시 30분쯤에는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조문했다. 정 장관은 “어머니 마음을 풀어서 딸들 편안히 보내주시고, 어머니도 힘내서 사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공간을 마련했다”며 “가신 두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런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여가부가 적극적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또 정 장관은 “이 두 분의 경우 2차 피해를 본 분들이기 때문에 2차 피해를 적극적으로 줄일 것”이라며 “2차 피해가 줄어야 피해자들이 마음 놓고 신고할 수 있으니까 그런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