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축구대표팀 감독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베트남 남자 축구대표팀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진출을 확정한 지난 27일 밤, 금성홍기를 휘날리며 경적을 울리는 오토바이와 폭죽을 터뜨리며 환호하는 시민들이 하노이·호찌민 등 전국의 도심으로 쏟아졌다. 군중 속에서 박 감독의 사진을 인쇄한 현수막과 태극기도 펼쳐졌다.
베트남 전역을 환희로 물들인 축제의 밤은 SNS 타임라인을 타고 전해졌다. 대형 전광판을 설치한 거리에서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군중, 도심을 관통하는 차로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 행렬, 붉은색 화염을 뿜는 폭죽 주변을 둘러싸고 노래를 부르는 축구팬의 사진과 영상은 28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라오고 있다.
박 감독의 인기는 웬만한 한류스타 못지않다. 그의 영문명 해시태그 ‘#parkhangseo'를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하면 박 감독을 향한 베트남인의 지지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박 감독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합성한 사진, 대표팀의 스타플레이어 은구엔 반 토안을 품에 안은 캐리커처가 공유되고 있다.
반 토안은 전날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시리아를 1대 0으로 이긴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에서 연장 후반 3분 결승골을 넣은 베트남의 간판 공격수. 하얗게 염색한 머리카락이 특징이다. 2002 한일월드컵 때 우리나라에서 거스 히딩크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과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박 감독과 반 토안의 사제관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성공담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 이야깃거리다.
베트남 군중은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면서 틈틈이 박 감독의 이름을 연호했다. 오토바이 행렬 속에서 금성홍기와 함께 태극기가 나부꼈고, 박 감독의 사진을 인쇄한 현수막이 거리에 내걸렸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축구대표팀 사상 최고 성적을 이룬 ‘명장’이면서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반세기 동안 뿌리 깊게 내린 반한감정을 치유할 ‘외교관’ 역할까지 해내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박항서 매직’이다.
박 감독의 성공담은 이제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다. 베트남은 오는 29일 오후 6시(한국시간)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박 감독의 조국 한국과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4강전을 갖는다. 승자는 최소 은메달을 확보하고 결승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패자는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려난다. 토너먼트 대진표의 맞은편에서는 일본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다가오고 있다.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베트남 국민,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얻길 원하는 한국 축구계 후배들이 모두 박 감독을 바라보고 있다. 박 감독은 지도자로서 당연한 책임을 선택했다. 그는 “조국은 대한민국이다. 조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다음 경기에서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