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적 진료 행위 낙인”…산부인과 의사들 ‘낙태 수술 전면 거부’ 파장

입력 2018-08-28 10:40

정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을 포함하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하고 나섰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8일 오전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복지부가 지난 17일자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표, 시행하면서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 자격 정지 1개월에 처한다’고 하여 산부인과 의사를 비도적적이라고 낙인 찍고 처벌 의지 명문화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의사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3개국에서 ‘시회적 경제적 적응 사유’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형법상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일본 조차도 모체보호헙에서 ‘사회,경제적 정당화 사유로’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개정안의 근거가 되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1973년 개정된 이후 지금까지도 의학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모자보건법 14조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및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법 270조는 허용 기준을 벗어난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산모의 경제적 문제나 원치 않은 임신 등의 이유로 암암리에 낙태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의사회는 “유전학적 장애가 있거나 풍진처럼 임신 중기 이후에는 태아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는 전염성 질환은 기형아 유발 가능성이 있는 모체 질환이라는 이유로 낙태를 허용한 반면 무뇌아 등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선천성 기형에서 낙태 수술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의학적 견지에서 맞지 않는 모순이며 해당 임신부에게 가혹한 입법 미비”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실상 수많은 낙태 수술이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불법 낙태 수술의 원인 및 해결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여성과 의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낙태 수술의 음성화를 조정해 더 큰 사회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회는 또 “우리 의사회는 낙태 수술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죄 처벌에 관한 형법과 관련 모자보건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현실과 괴리가 있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 소원 절차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당장의 입법 미비 해결에 노력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의사회는 “대한민국 산부인과의사는 정부가 비도적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낙태 수술의 전면 거부를 선언한다”며 “이에 대한 모든 혼란과 책임은 복지부에 있음을 밝혀둔다”고 말했다. 직선제산부인과 의사회는 전국 회원이 1800여명이다.

의사회는 지난 2016년 12월 180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한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대회원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수술 중단에 1651명(91%)이 압도적으로 찬성표를 던져 언제든 낙태수술 중단 선언을 할 수 있는 뇌관으로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최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 단체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잇따라 열리며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의사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며 그 모든 문제를 의료계에 전가하고 있는 형국으로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해당 수술에 대한 전면 중단 선언을 예고해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