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는 여자가 이상형” 우스갯소리에 여성들이 웃지 못하는 이유

입력 2018-08-28 05:00
A씨 제공

“자취하는 여자가 이상형이에요” “혼자 사는 여자가 좋아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던 때가 있었다. 이 우스갯소리들은 우리 일상뿐만 아니라 방송에서도 그대로 전파가 될 정도로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어나고 불안감과 두려움을 호소하는 여성이 속출하면서 이는 더 이상 웃어넘길 수 없는 말이 돼버렸다.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강도나 살인 등 강력 범죄나 침임 범죄에 대한 두려움에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와도 창문을 굳게 닫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창문 너머의 수상한 시선과 불법 촬영을 염려해 ‘창문 가리개’를 설치하는가 하면, 새로 이사 가는 집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니 스위치나 전구 등을 살펴보는 여성들도 있다.

◆ 창문 너머 수상한 시선에 ‘창문 가리개’ 설치… 이삿날엔 집안 곳곳 ‘몰카’ 찾아


자취생활 2년 차에 접어든 A(28)씨는 “창문 너머로 나를 훔쳐보는 수상한 시선에 최근 창문 가리개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A씨는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어두니 맞은편 건물에 사는 사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가깝기도 하고 창문이 큰 편이라 같은 층은 물론 위층에서도 우리 집이 훤히 내려다보일 것 같았다”며 “아니나 다를까 한 번은 앞집 대각선 집에서 한 아저씨랑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창 너머 나를 빤히 보고 있는데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 일을 계기로 이제는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열지 못하게 됐다”며 “평소 방에서는 옷을 편하게 입고 특히 샤워하고 나면 옷을 가볍게 걸치는 편인데 창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나도 모르게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A씨는 “하지만 ‘내 집에서 내가 왜 이래야 하나’ 라는 생각에 이것저것을 알아보다 창문 가리개라는 걸 알게 됐다”며 “창문 가리개를 설치해 이전보다는 생활이 편해졌지만, 애초부터 이런 걸 설치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화나고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A씨 제공

자취한 지 약 3년 정도 됐다는 B(23)씨는 여성들은 자취방을 구하는 단계부터 고려할 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B씨는 “나는 혼자 살 집을 구할 때 여기 살던 이전 세입자의 성별도 알아봤다”고 했다. 그는 “혹시 집 안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거나 키를 복사해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이사 온 첫날엔 스위치, 전등, 벽에 뚫린 구멍, 에어컨 등을 다 살펴봤다”고 말했다.

B씨는 “집 안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았다고 안심하기엔 이르다. 이 집에 여자가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배달음식도 안 시킨다. 만약 시킬 때는 문 앞에 두고 가달라고 문자를 남긴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내 방이 특정되지 않기 위해 밤늦게 들어올 것 같은 날에는 불을 그냥 켜놓고 나가거나 들어와서도 잠깐 불을 켜지 않는다”며 “집세만 고려해도 모자를 판에 이런 부분까지 살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우울하고 참담한 심경”이라고 말했다.

◆ “이게 여성의 자취방이다” 여성의 방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에 문제제기


실제로 지난달 25일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40대 남성이 아파트 옥상에서 맞은편 오피스텔 20층에 사는 여성을 불법 촬영해 불구속 입건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카메라를 이용해 직선거리로 400미터가량 떨어진 오피스텔 내부를 촬영했으며 이를 수상하게 여긴 건물 거주자의 신고로 붙잡히게 됐다.

지난 3일에는 자신의 원룸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를 발견한 여성도 있었다. 피해 여성은 집 안에 설치된 화재경보기와 동작감지센서를 수상히 여겨 기기를 직접 뜯어 확인했고, 그 안에서 몰래카메라를 발견했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사람은 원룸 주인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피의자를 긴급체포하고 증거물을 압수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드림컴트루재단 법률상담소 블로그 제공

지난해부터 많은 여성이 SNS상에서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를 달고 혼자 사는 여성으로 겪었던 스토킹·불법촬영·주거침입 등의 범죄 피해 위험을 공유했다. 이 운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담뿐만 아니라 범죄 위험을 피하는 방법도 공유하고 있다. 해당 운동에 동참한 C(26)씨는 “혼자 사는 여성의 방을 성적 대상화 하는 시선에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이는 여성의 공간에서 보이지 않았던 당사자의 경험과 관점을 가시화 시킨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최원진 활동가 역시 “흔히 혼자 사는 여자들은 ‘유혹하기 쉬울 것 같다’ ‘정숙하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에 시달린다”며 “여성들이 자취방에서 겪은 경험담을 공유하는 일은 여성을 멋대로 성적 판타지 대상으로 삼는 남성들에 맞서 자기 삶의 능동적인 주체임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문단속을 잘해라’… 근본적인 대책 될 수 없어”


1인 가구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감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여성 1인 가구의 46.2%가 자신의 일상생활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연립·다세대 주택(48.8%), 고시원·원룸(36.8), 오피스텔(33.2%) 거주자가 불안감을 호소했다.

또 지난해 울산대 경찰학과 강지현 교수가 발표한 ‘1인 가구의 범죄 피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1인 가구 가운데 개인 범죄 피해율이 가장 높은 세대는 33세 미만의 청년 1인 가구(8.4%)였다. 신체 범죄 피해 역시 34~65세의 성인 가구보다 발생 빈도가 높았다. 전체 범죄의 여성 피해자 비율도 늘어났는데,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1분기 33.4%(9만9024명)였던 여성 피해자는 2016년 2분기엔 34.8%(11만4393명)로 증가했다.

A씨 제공

전문가들은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부재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가족재단 장진희 연구위원은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여성들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할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며 “신변에 위협되는 사건이 발생해도 보복 등을 우려해 신고하지 못하고, 피해를 보거나 집주인과의 마찰이 있어도 여성이란 이유로 참고 피해를 보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 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정책과 사회적 인식이 아직 미진한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취약하기도 하고 계층적으로도 낮은 위치에 있어 노동 시장에서도 불안정한 상태다. 따라서 여성들이 사는 공간은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여성들에게 ‘문단속을 잘해라’라고 말하는 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일 뿐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입법을 통해 처벌을 강화하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