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사임 요구에 대해 “한마디도 안하겠다”며 침묵했다.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는 26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미 2013년부터 시어도어 매캐릭 전 미국 추기경의 성범죄를 알고도 은폐했다면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교황이 물러나야한다는 주장을 담은 11쪽짜리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교황은 이날 아일랜드 서부 녹 성지(Knock Shrine)를 방문한 로마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비가노 대주교의 공개서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교황은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이 말을 해야 한다고 말하겠다”면서 “관심있는 분들은 모두 문서를 신중하게 읽어보고 스스로 판단하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 내 생각에 문서는 스스로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주재 바티칸 대사를 지낸 비가노 대주교는 서한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3년 사임하기 이전에 매캐릭 추기경의 비행을 보고받고 미사 집전 금지 등의 처벌을 내린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캐릭을 처벌하는 대신 그를 복권시켜 미국 주교 선발권을 허용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그(프란치스코 교황)는 최소 2013년 6월 23일부터는 매캐릭이 연쇄 포식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회의 극단적으로 극적인 이 순간에, 교황은 실수를 인정하고 무관용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매캐릭의 비행을 덮은 추기경과 주교들에게 첫번째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그들과 함께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비가노 대주교가 서한에서 언급한 2013년 6월 23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지 약 석달 뒤에 열린 고위 성직자 회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비가노 대주교 서한에서 교황이 매캐릭 추기경에 대한 의견을 자신에게 물어봤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교황에게 “매캐릭 추기경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관한 방대한 (비행 조사)보고서가 있다. 그는 수 세대에 걸쳐 사제와 신도들을 타락시켰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그에게 종신 속죄를 명했다”고 답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이탈리아 바레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대주교가 된 이후 주미대사 등 바티칸 요직들을 거쳤다. 2011년 보수파를 대표하는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과 충돌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당시의 내부 갈등이 ‘바틸리크스( VatiLeaks)’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것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퇴진 결심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후 더블린 피닉스 파크에서 열린 세계가정대회 미사에서 “일부 교회 구성원들의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돌보지 않고 침묵을 지킨 데 대해 사과드린다”면서 신의 자비를 구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교회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공감과 정의, 진실을 보여주지 못한 시간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일부 교회 구성원들이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돌보지 않고 침묵을 지킨 데 대해서도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