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 아닌 무릎으로 그는 정상에 올랐다

입력 2018-08-27 12:59 수정 2018-08-27 13:03
한국 주짓수 국가대표 성기라가 지난 25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주짓수 62kg급 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는 모습. 성기라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경기에서 서브미션 승리를 거두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뉴시스

한국 주짓수 국가대표 성기라가 지난 25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주짓수 62kg급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주짓수 62㎏급 챔피언 성기라(21)는 지난 26일(한국시간) 자카르타 시내의 한 정형외과를 찾았다. 선수촌에서 연결해준 이 병원에서, 그는 부어오른 무릎의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했고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대회 1회전에서부터 다쳤던 무릎 외측인대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고통을 참고 결승전까지 계속해서 격렬한 경기를 펼쳤기에 더욱 좋지 않았다.

알고 보니 팔꿈치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었다며 성기라는 약간 웃었다. 국내에서 다시 정밀검진을 받아 봐야겠다는 것이다. 성기라는 “무릎은 물론 종아리까지 부어올라서, 대회 이후에도 얼음찜질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1회전에서 만난 상대는 성기라에게 하체 관절기를 걸어 왔다. 평소 좋지 않았던 무릎이었지만 성기라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경기를 이긴 뒤에 누군지도 모르는 대회 운영요원들에게 응급처치를 받았다. 2회전 3회전… 성기라는 계속 기합을 넣고 뛰었다.

성기라는 “아시안게임에서 주짓수가 처음으로 선을 보였고, 내가 처음으로 나가는 선수였으므로 당연히 버텨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걷는 것도 힘들고 서 있는 것이 최선인 상태였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끔찍한 상황이었다. 정상이 아닌 무릎으로 그는 정상에 올랐다.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상대에게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결승전은 4대 2로 이기고 금메달을 땄다.

“무실점으로 금메달을 따려는 게 목표였느냐”고 묻자 성기라는 “그뿐만이 아니다”고 답했다. 성기라는 “무실점뿐이 아니라, 전 경기에서 서브미션(상대의 탭아웃을 얻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아쉽다고 할 정도로, 성기라의 목표는 컸다. 성기라는 “부상만 아니었다면 상대로부터 경기 포기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고 말했다.

성기라는 원래 복싱선수였지만 주짓수로 전향했다. 그는 “맞는 게 너무 싫었다”고 말했다. 성기라는 “코치님의 권유로 5년 전인 2013년부터 주짓수를 시작했는데, 나와 잘 어울리는 운동이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이길 수 있다는 말로 주짓수를 설명하는데, 정말 그렇다”며 “내가 기술을 선보이면서도 ‘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성기라는 대개 토너먼트로 이뤄지는 주짓수의 경기 방식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한판 한판 상대를 제압하면서, 점점 올라가는 성취감, 그런 게 큽니다.” 주짓수 선수로서의 롤 모델이 있느냐고 묻자 “딱히 없다”고 답한다. 아시안게임 사상 첫 주짓수 금메달리스트로서는 당연한 자부심일지도 모른다. 그는 “롤모델을 따르기보다는, 전 경기를 서브미션으로 잡아 금메달을 따는 선수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상대를 마주하는 순간마다 “내가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만 했다 한다.

성기라의 부모님은 딸의 금빛 낭보에 기뻐하면서도 부상을 걱정하고 계신다고 한다. 성기라는 “원래 아시안게임 이후 몇 개의 국제대회를 더 치르려 했지만, 금메달을 딴 것에 만족하며 당분간은 재활을 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대회를 마친 그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성기라는 “내가 여름휴가를 못 갔다”며 “한국의 날씨가 지금 어떤지 모르겠다. 물놀이를 하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