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선 의원.’ 집권 여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1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될 만한 스펙은 아니다. 탄탄한 조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연륜을 밀고 나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8명의 최고위원 후보 가운데 득표율 21.28%를 기록하며 1위로 지도부에 입성한 이변의 주인공은 ‘거리의 변호사’ ‘거지갑’ 등의 수식어를 가진 박주민(45·초선) 의원이다.
박주민 의원은 2위 박광온(61·재선·득표율 16.67%) 의원, 3위 설훈(65·4선·16.28%) 의원 등과도 득표율 차이를 크게 벌이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대의원 득표율(14.70%)로는 3위에 머물렀지만(1위 박광온 17.50%, 2위 설훈 16.21%) 권리당원, 일반당원, 국민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권리당원 투표와 국민여론조사에서는 각각 27.34%, 26.65%로 30%에 육박하는 결과를 얻었다. 일반당원 득표율도 23.50%로 1위에 올랐다.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독특한 별명들이 설명해준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그는 10여년 간 공익 변호사로 일해왔다. 쌍용차 노동자 해고사태, 용산 참사, 밀양 송전탑 갈등,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세월호 참사 등의 굵직한 사건·사고에서 피해자들을 도우며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서울 출신으로 대원외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45회)에 합격한 박주민은 처음엔 로펌에 들어갔으나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10여년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2012년부터 4년 동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차장, 2015년부터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2016년 총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영입해 서울 은평갑에서 당선됐다. 거리에서 ‘힘없는 자들’을 위해 일하면서 희열을 느꼈다는 박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힘없는 자들의 힘’을 구호로 삼았다.
그의 또다른 별명은 ‘거지갑’이다. 이 별명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인 2016년 9월 고(故)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장을 오랫동안 지키다 탁자 위에서 잠든 모습이 알려지면서 얻게 됐다. 자료가 잔뜩 든 백팩을 메고 어디서든 쪽잠을 자며 의정활동에 ‘열일’을 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의원이 된 뒤에도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에 특히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국민 예능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박주발의’라는 별명도 얻었다. 100여건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에 근거한 명예로운(?) 별명이기도 하다. 특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움직임과 관련해 ’사회적 참사 법안’(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박주민은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왕’이 되기도 했다.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상세하게 공개하면서 후원금 모금에 나섰던 그는 지난해 7월 후원요청 영상을 공개한 뒤 40시간 만에 후원한도 3억원을 채우기도 했다. 그가 40시간 만에 모은 후원금은 3억4858만원이었다.
박주민은 최고위원 당선 직후 “앞으로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할까, 또 어떻게 하면 잘할까, 가슴이 무겁다”며 “제가 여러분께 드렸던 말, 여러분들이 저에게 해주셨던 말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최고의 최고위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