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아프리카 기린’ 누가 다 팔았나

입력 2018-08-27 06:00
미국동물애호협회

큰 키와 얼룩무늬, 온순한 걸음으로 눈길을 가로잡는 기린. 3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는 약 16만 마리의 기린이 자연을 만끽하며 살았다. 지금 전 세계에는 10만 마리도 되지 않는 기린이 남아있고, 기린의 수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불법 사냥, 서식지 파괴, 그리고 동물을 밀렵하며 스포츠형 사냥을 즐기는 ‘트로피 헌터’ 때문이다.

불법으로 사냥한 기린은 미국에서 다양한 장신구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다. 24일 미국동물애호협회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약 4천마리의 기린이 미국으로 수입됐다. 수입된 기린은 약 4만개의 조각으로 잘려 다양한 형태로 팔려나갔다.

이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52개 상점에서 기린으로 만든 물품을 팔고 있었다. 기린의 가죽은 털이 뽑히고 염색돼 기린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기 힘들었고, 부츠, 성경 표지, 가구 등에 활용됐다. 기린 가죽을 자른 양탄자, 꼬리털로 만든 팔찌도 있었다. 두개골은 그 형태 그대로 팔리기도 했으며, 뼈로 만든 특수 칼도 팔았다. 기린의 한쪽 다리가 70달러에 팔리기도 했고, 서 있는 모양 그대로 박제된 기린도 있었다.

미국동물애호협회

미국동물애호협회 연구자들이 잠입 취재를 했을 때, 대다수의 판매자들은 “트로피 사냥꾼들에게 제품을 구입했다”고 밝혔다. 텍사스의 ‘BS트레이딩’과 플로리다의 ‘위튼 케이스’의 두 판매자들은 “아프리카의 마을을 구하기 위해 공격적인 기린은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아프리카 전문가들은 지금껏 기린의 공격적인 행동이나 보복 살인에 대한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작년 남아프리카에서 야생 기린을 사냥해 논란을 일으킨 한 미국 여성을 포함한 일부 트로피 사냥꾼들은 기린을 사냥하는 게 “환경 보호를 위한 노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냥으로 번 돈은 다른 종(種)을 보호하는 데에 쓰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트로피 사냥꾼들은 야생 동물 사냥으로 거래를 하고, 상당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미국동물애호협회

미국동물애호협회는 아프리카 기린들이 조각으로 잘려 팔려나가는 현장을 공개하며 “트로피 사냥꾼들은 아름다운 동물의 모든 부위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냥꾼들은 기린을 동물 제품 제조업체 및 딜러들에게 판매하고, 이들은 미국의 판매업자들에게 완제품을 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린을 잡아서 판매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는 전혀 없기 때문에, 보다 규제가 강력한 코끼리나 사자를 대신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밝혔다. “기린으로 만든 제품의 가격은 매우 다양하지만, 딜러들과 판매업자들이 동물의 시체에서 마지막 1달러까지 짜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기린의 얼굴, 속눈썹 등 모든 것을 동원해 만든 기괴한 베개까지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다고 한다.

기린은 지난 3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 위기 취약 동물로 규정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기린은 절멸 위기 종 보호법에 따라 멸종 위기종으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즉, 기린의 사냥·유통·판매 모두가 합법적임을 의미한다. 그렇게 아프리카의 기린은 각종 규제에서 빗나간 채 ‘고요한 멸종’을 맞이하고 있다.

박세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