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민족, 격투 종목에서 빛나다

입력 2018-08-26 17:27
성기라가 25일 열린 주짓수 여자 62㎏급 결승전에서 싱가포르의 티안 엔 콘스탄스 리엔을 4대 2로 꺾은 후 양팔을 들어 올리며 기쁨을 표하고 있다. AP뉴시스

맞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맞섰다. 가족의 만류와 주변인들의 무관심, 부족한 행정·재정적 지원도 그들의 꿈을 꺾을 수는 없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격투 종목의 선수들이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환하게 빛났다.

한국의 격투 종목 선수들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깜짝 메달을 연이어 따내고 있다. 주짓수부터 카바디, 가라테, 우슈 등 이름조차 생소한 비인기 종목에서 구슬땀 흘려온 선수들이 아시아 정상권에 올랐다.

성기라는 이번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주짓수에서 우승하며 아시안게임 최초 주짓수 금메달리스트라는 새 역사를 썼다. 성기라는 25일 열린 주짓수 여자 62㎏급 결승전에서 싱가포르의 티안 엔 콘스탄스 리엔을 4대 2로 꺾었다. 첫 경기에서 무릎 인대를 다쳤지만 4강전까지 상대에게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압도적 기량을 선보이며 정상에 올랐다. 귀한 딸이 투기 종목에서 고생할 것을 걱정한 어머니의 반대를 떨쳐내는 금메달이었다. 황명세도 주짓수 남자 94㎏급에서 동메달을 추가했다.

한국 남자 카바디대표팀이 24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신화뉴시스

격투기와 술래잡기를 결합한 듯한 카바디에서는 값진 은메달이 나왔다. 예선에서 종주국인 인도를 누르며 결승까지 진출한 한국 남자 대표팀은 24일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16대 26으로 아쉽게 패했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의 동메달에 이은 두 번째 메달로, 실업팀 하나 없는 카바디 불모지에서 거둔 큰 성과다. 대한카바디협회는 대한체육회 준가맹단체인 탓에 대표팀은 국가대표 단복도 제공받지 못하는 서러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인도 프로리그에서 뛰는 에이스 이장군을 중심으로 ‘원팀’이 돼 똘똘 뭉쳐 극복했다. 이장군은 경기 후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해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가라테의 세부 종목 가타에서도 사상 첫 메달을 따냈다. 박희준은 25일 열린 가라테 남자 카타 동메달 결정전에서 마카오의 킨항궉을 4대 1로 이기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가타는 가상의 적과 맞서 방어하고 반격하는 연속 동작을 정확하고 빠르고 힘있게 연출하는 종목으로 태권도의 품새와 비슷하다. 중국의 전통 무술인 우슈에서도 조승재가 도술·곤술에서 은메달을, 이용문과 함관식이 각각 남권·남곤과 산타 70㎏급에서 동메달을 확보했다.

한국은 그동안 태권도와 유도 등 전통적 무도 분야에서 강세를 보여 왔으나, 이번 대회에서 비인기 격투 종목에서 성과를 내며 저변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깜짝 메달이 아닌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대회 이후에도 아낌없는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