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의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공격수 황의조(감바 오사카)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절정의 골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대회 4경기에서 5골을 터뜨려 득점 선두에 올라 있다. 대회 득점왕도 노려볼 법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황의조는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며 대표팀 발탁 과정에서의 인맥 축구설을 종식시켰다. 그간 대표팀에서의 아쉬움, 비난 여론에 대한 설움도 단숨에 씻어냈다. 한국 축구도 얻은 게 있다. 바로 황의조의 재발견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축구는 정통 스트라이커의 부재에 고민이 컸다. 현대 축구에서 기술이 강조되면서 빠른 스피드와 개인기를 활용해 골을 넣는 유형의 선수는 늘어났다. 그러나 단 한 골이 필요 순간 간결한 플레이로 확실한 득점을 해줄 수 있는 선수는 줄어들었다. 최용수 황선홍 이동국, 그리고 황의조와 같은 유형의 스트라이커를 팬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6일 황의조는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 ‘김학범호’의 해외파 중 가장 먼저 합류했다. 당시만 해도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좋게 봐주실 것”이라며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의지를 조용히 내비칠 뿐이었다.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본인 스스로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 워낙 강했다. 올 시즌 일본프로축구 J1리그에서 13골(컵대회 포함)을 뽑아낸 골 감각을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주겠다는 각오 하나로 자카르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 15일 바레인과의 대회 예선 1차전. 황의조는 미친 듯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상대 전력이 약했지만 한 골이라도 더 넣으려는 의지가 강했다. 결과는 황의조의 해트트릭, 한국의 6대 0 승리로 이어졌다.
지난 17일 말레이시아와의 예선 2차전에서 한국은 1대 2 충격패를 당했다. 이날도 황의조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악착같이 뛰었다. 후반 43분, 힘겹게 찾아온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했다. 이 골 덕분에 한국은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토너먼트로 물러설 곳이 없는 지난 23일 이란과의 16강전. 한국은 선제골이 절실했다. 어린 선수들이 많아 선제골에 경기 흐름이 좌우되는 경향이 짙어서였다. 이날 전반 30분 이후 골이 나오지 않자 한국은 다급해졌다. 일부 이란 선수와의 신경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공을 뺏긴 황인범이 거친 태클로 경고를 받기도 했다.
황의조가 전반 39분 황인범의 패스를 이어받아 선제골을 터뜨렸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황의조는 침착했다. 이후 한국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되찾았다. 후반 이승우의 추가골까지 나오면서 8강 티켓을 챙겼다.
이번 대회 황의조는 빼어난 골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다. 총 11개의 슈팅을 날렸는데 6개가 유효슈팅이었다. 그 중 5개가 골로 연결된 셈이다. 득점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골로 연결하는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의 움직임과 적극적인 몸싸움을 통해 공간을 확보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특히 “팀 승리에 기여하겠다”는 황의조의 진정성은 이란전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전방에서 공격수의 역할을 하면서 수비 가담에도 적극적이었다. 단순히 골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이 모습을 본 많은 팬들이 황의조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황의조를 왜 러시아월드컵 A대표팀에 뽑지 않았냐’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아시안게임 2연패를 노리는 김학범호의 일정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또 한 명의 정통 스트라이커를 재발견한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우승, 그리고 축구 발전을 기대하는 팬이라면 이제는 황의조에게 진심이 담긴 응원의 힘을 전해도 될 것 같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