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중대 기로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주로 예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전격 취소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는 것을 ‘중국 탓’으로 돌리면서 미·중 무역갈등 해소를 선결 과제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폼페이오 장관에게 북한을 방문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을 방문한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취소한 것이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 계속…“중국이 비핵화 돕지 않는다”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를 ‘중국 탓’으로 돌렸다. 그는 “중국이 이전에 했던 만큼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적었다. 미국의 대중 무역공세가 강경해진 가운데 중국이 미국을 예전만큼 돕지 않는다고 보고 이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시점을 ‘중국과의 무역 문제가 해결된 뒤’로 미루겠다고 했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과의 무역 문제가 해결된 뒤 북한으로 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오후 백악관 내부회의를 열고 폼페이오 장관에게 방북을 취소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무역협상이 별다른 진전 없이 끝난 게 방북 취소의 주요 이유로 풀이된다. 중국과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비핵화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데이비드 말파스 미 재무부 국제문제 담당차관과 서우원(王受文)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지난 22~23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났으나 성과 없이 협상이 종료됐다.
‘빈손 성과’에 대한 우려도 방북 취소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2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서 또다시 빈손으로 돌아온다면 정치적으로 너무 수치스러울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이 폼페이오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은 것 같다”며 “북한을 방문한 뒤 빈손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막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했다.
북미 2차 회담 가능성 시사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전격 취소하면서도 북한과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가능성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사이에 나는 따뜻한 안부와 존중심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고 싶다. 나는 그를 곧 만나게 되길 바란다!”고 자신의 트위터에 적었다.
마이클 푹스 전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이번 방북 취소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한 차례 취소했던 사례와 비교했다. 그는 “정상회담을 취소한 뒤 다시 만나기로 했던 전술을 다시 사용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스티븐 비건 전 포드자동차 부회장을 임명했다고 발표하면서 그와 함께 다음주에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비건을 대북 특사로 세우고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목표 실현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