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남현희 ②] “날 찌르길 기다렸다, 그리고 밑을 파고들었다”

입력 2018-08-25 07:01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은퇴하는 남현희가 2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카르타=윤성호 기자

24일(한국시간) 만난 한국 여자펜싱 국가대표 남현희(37)는 “이번 아시안게임이 선수로서의 마지막 대회였다. 전날 경기가 은퇴경기였다”고 말했다. 만 17세의 나이로 첫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는 한때는 ‘소녀 검객’ ‘땅콩소녀’로 불렸다. 이제는 ‘엄마 검객’으로 소개된다. 그는 2013년 출산한 직후 피스트로 돌아왔다. 이번 대회까지 모두 99개의 국제대회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3년 4월 딸을 얻은 뒤 피스트로 복귀, 무서운 속도로 세계랭킹을 끌어올렸다.

7~8년간 세계랭킹 3위권 안에 계속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신을 한 뒤 경기를 못 나갔어요. 경기에 못 나가면 포인트는 사라집니다. 선수로 복귀한 뒤 세계랭킹을 확인하니 ‘9999…’ 인 거예요. 처음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신인 선수로 돌아간 것입니다. 과연 이걸 끌어올릴 수가 있을까 하고 망연자실해 있었어요.

하지만 출산 후 2번째로 나간 국제대회인 2014 헝가리월드컵에서 동메달을 땄어요. 그리고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제가 개인전 단체전 1위를 했을 겁니다. 그렇게 포인트를 획득하며 16위 내 ‘랭커’가 됐어요. 랭커가 되면 좋은 게, 예선전을 안 뛸 수 있습니다. 다른 종목들의 ‘시드’ 같은 겁니다. 아이를 낳고 복귀한 해라서 체력적인 부담이 있었는데, 그 버거움이 잘 풀린 셈이죠.

-그저 잘 해야겠다는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고, 남모를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저를 응원해준 가족의 힘이 컸습니다. 그리고 또 결정적으로, 피스트 위에 올라가서는 젊었을 때의 저를 믿었어요. 제가 잘 했던 동작들을 되새겼어요. 경기 전에는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결단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자신 있게 경기에 임했습니다.

-‘남현희’ 하면 신장이 작지만 그만큼 날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가장 자신있는 동작은 무엇인가.

저는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제 기술이 먹힌다는 게 신기해요. 저는 키가 작고 힘이 없는 선수인데, 이 상황을 헤쳐 나가려면 먼 거리에서 밑을 파고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다리가 먼저 들어갈 자신은 있었습니다. 상대와 동시에 공격을 성공하면, 먼저 움직인 선수가 공격에의 의지가 있었다고 판정을 받아 득점을 인정받는 법입니다. 저는 다리로, 먼저 움직일 수 있었어요.

-다리가 먼저 움직인다 해도, 그 다음 문제는 ‘동시타’를 만드는 것이었을 텐데.

밑을 파고들어요. 제가 상대 선수의 밑을 파고들 때, 상대로서는 막을 수도 있고, 도망갈 수도 있고, 제 쪽으로 가까이 붙을 수도 있어요. 자 그런데 보세요.

남현희는 앞에 앉은 기자를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손으로는 들어올린 오른팔 아래 옆구리 부근을 가리켰다. 왼손에 칼을 잡고 서는 그에게 가까이 느껴졌을 공간이었다. 그는 “여기가 빈다”며 눈을 반짝였다.

막으면, 팔 아래가 비어요. 뻗어도, 똑같은 공간이 비죠. 상대가 뻗으면서 뒤로 물러나기도 해요. 팔을 뻗고 도망가는 상대를 제가 혼자 찌를 수는 없어요. 조금 위험하기는 한데, 결국은 상대 선수도 저를 찌르려 하는 타이밍을 노려야 해요. 펜싱은 상대성 운동이예요. 상대가 저를 찔러 줘야 제게도 같은 거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타겟을 두고, 타이밍을 노려서.

제 타겟은 상대의 밑에 있었어요. 제가 키가 작으니까요. 제가 농구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높이 있는 공을 빼앗거나 누굴 뛰어넘어 슛을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밑에 돌아다니는 공을 빼앗는 건 제가 좀더 빠를 거예요. 그게 저의 펜싱이예요. 그게 지금까지 먹혀 왔어요.

이건 오른손잡이를 상대할 때의 이야깁니다. 같은 왼손일 때에는 스피드로 잡습니다. 상대방을 꾀어서 들어가는 게 더 나아요.

제 마지막 게임이었던 어제 단체전 4강전의 8라운드에서 13득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밑을 공략했기 때문입니다. 할 때마다 저도 숨이 차고 근력도 부족하고 통증도 느끼는데, 결과가 득점으로 계속 나타나니까… 그런 때에는 자신감을 갖게 되죠. 아, 나 더 할 수 있겠구나, 더 해도 되겠구나.

-무릎이 오래 전부터 정상이 아니라고 들었다.

저는 2014년에는 몸을 만들고 2015년부터 국제대회에서 랭킹을 끌어올리려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대표팀에 입촌하고 국제대회에서 포인트를 쌓다 보니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나갈 자격이 생긴 거예요. 문제는, 8월이 아시안게임인데 제가 5월에 오른쪽 무릎을 다쳤습니다. 병원이 하는 말은 ‘무릎 속에 4군데에서나 문제가 발견된다. 그냥 선수로 뛸 만큼 뛰고, 은퇴할 때 수술해라.’ 이거였어요. 수술을 해야 하는 무릎으로 인천아시안게임을 뛴 거예요. 인천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운동을 관두려 했죠. 팀에 보탬이 안 될까봐.

그런데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땄고 단체전에서 금메달이 나오면서, 소속팀에서 올림픽 티켓을 따 달라는 기대를 좀 하셨습니다. 조금 깎이긴 했지만, 제가 임신 출산하는 기간에도 급여를 계속 주신 소속팀이었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답하려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티켓도 땄습니다. 남들은 4년간 준비하는 것인데, 티켓을 일찍 따낸 뒤에 신기하기도 했어요. 또 자신감이 생겼죠.

남현희가 지난달 10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거울을 보며 동작을 확인하고 있다. 진천=윤성호 기자

-하지만 수술이 필요한 무릎 상태는 그대로였을 텐데.

그래서 리우올림픽 출전했을 때 ‘티켓 확보만으로도 감사하다, 시합에 나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 기사의 댓글들에 상처를 조금 받았습니다. ‘뭐야, 메달이 목표인 게 아니야?” “후배한테 주지 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후배들에게 주려 한다고 해서 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의 말씀이 상처가 됐어요. 제가 못 따더라도 한국 선수가 못 나가는 건데, 모르시는 말씀이 좀 속상하더라고요.

리우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제가 오히려 ‘펜싱 더 하고 싶다’고 했어요. 동기부여할 거리들이 많더라고요.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6개인데 수영의 박태환 선수와 같았고, 국제대회에서 딴 메달을 계산해 보니 98개였던 것입니다. 비인기종목으로서도 국위선양을 하고픈 느낌, 100개를 채우고픈 마음… 찬스가 주어졌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몸은 점점 안 좋아졌어요. 엉덩이뼈도 그렇고 햄스트링은 찢어졌고, 무릎은 수술을 했고요.

왼손잡이인 남현희는 피스트에 왼쪽 무릎을 앞으로 향하게 하고 선다. 남들보다 빠르고 격렬하게 움직여야 했기에 그의 몸에는 무리가 갔다. 남현희는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의 엉덩이뼈를 촬영한 X레이 사진을 보여줬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의 엉덩이뼈는 왼쪽이 오른쪽보다 2~3배 컸다. 다시 보니 남현희가 의자에 약간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굿바이 남현희 ③]에서 계속됩니다.

자카르타=이경원 기자, 사진=윤성호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