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남현희 ①] “다시 살아도 이만큼 노력할 수 없어… 나는 99점”

입력 2018-08-25 07:00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은퇴하는 남현희가 2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신의 플뢰레 경기를 모두 마무리한 남현희는 이날 대표팀 동료들의 에페 단체전을 응원하기 위해 자카르타 컨벤션센터를 찾았다. 자카르타=윤성호 기자

넘겨받은 스코어는 18-35, 칼을 맞댄 상대는 15살 어린 오른손잡이 일본 선수였다. 한국 여자펜싱 국가대표 남현희(37)는 큰 점수차에 숨이 찼다고 한다. 남현희는 “내 기술은 이번에도 먹힐 것이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른손잡이가 팔을 뻗어올 때 생기는 희미한 오른쪽 옆구리의 빈틈을, 낮은 데서 출발한 남현희의 칼이 정확히 찾아갔다. 펜싱을 하기엔 너무 작다는 신장 154㎝의 왼손잡이 남현희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4실점을 하는 동안 무려 13득점, 남현희는 31-39를 만들어 두고 마지막 주자 전희숙에게 바톤을 넘겼다. 이 4강전의 최종 결과는 36-45, 한국의 패배였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펜싱 플뢰레 단체전에 참가한 남현희는 지난 23일(한국시간) 그렇게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것은 그의 99번째 국제대회 메달이었다.

24일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펜싱 경기장에서 만난 남현희는 “그것이 내 은퇴경기였다”고 국민일보에 말했다. 1999년 만 17세의 나이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는 20년간 국가대표 검객이었다. 한국 여자펜싱 사상 첫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하계 아시안게임에서만 6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남현희는 2020 도쿄올림픽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아직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딸 자신감은 있다. 하지만 이젠 너무 지쳤다”고 말했다.

-혹시, 어제 경기가 은퇴경기였나.

네. 은퇴경기였어요. 지금은 몸 상태든 환경이든 감당할 수 없어요. 그 판단에 따라 지금을 은퇴 시기로 결정했습니다.

-5번째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아시안게임 단체전 동메달을 통해 국제대회 99번째 메달을 목에 걸었다. 펜싱 선수 남현희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몇 점의 점수를 주겠나.

저는 이런 질문을 지금 처음 받아 봤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람들도 ‘20대로 돌아가면 더 열심히 살 거냐’ ‘그러면 뭘 선택할 것 같냐’는 질문을 하곤 하네요. 그런데 저는 후회가 없어요. 동료나 선배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어, 나는 안 돌아가도 될 것 같아.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살 자신이 없어’라고 해요.

남현희는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그는 “내가 ‘오버’를 하면 했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고 했다. 그는 “경기내용이든 메달 개수든, 늘 동기부여할 걸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저는 계속 동기부여할 것을 찾으며 노력했고, 이루려 했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100번째 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메달이 99개가 됐네요. 100개에서 1개가 부족합니다. 저는 제게 점수를 준다면 99점, 100점에서 딱 1점 부족한 99점을 주고 싶어요.

-금메달이 더욱 익숙한 남현희일 테다. 마지막 메달을 동메달로 추가한 느낌은 어떤가.

항상 선수들은 이기며 끝나는 금메달을 원하고, 금메달을 딴 뒤에도 그 다음 대회의 목표가 또 금메달이고… 매번 그렇습니다. 이번엔 동메달을 딴 선수들의 마음을 좀더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메달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알았어요.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이번 대회를 준비할 때 예전만큼의 기량이 사실 안 나왔어요. 경기할 때 제가 제 스스로에게 답답한 부분이 있었어요. 이렇게 하면 득점이 돼서 경기운영이 돼야 할 때, 외려 실점이 이뤄질 때도 있었어요. 제 패턴과 생각대로 안 되니까 답답했어요.

-이번 대회는 남현희에게 어떤 대회였나. 후회가 남진 않는가.

그냥 자리가 남아 도전한 게 아니라, 후배들과 치열하게 경쟁한 결과 이번 아시안게임에 왔습니다. 4명이 단체전을 뛸 수 있었고 2명이 개인전 자격을 받는데 랭킹 싸움에서 2명 안에 들었어요. 저는 여전히 제가 단체전을 뛰면 팀에 ‘플러스’가 되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오는 괴로움이 있어요.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모두들 안 좋은 성적에 대한 핑계를 말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남자 펜싱의) 박상영 선수가 ‘내가 아파서가 아니라, 상대가 잘 했다’는 인터뷰를 한 걸 봤어요. 저도 ‘내가 핑계를 대고 있는 건가’ 하고 돌이켜 생각해 봤죠. 근데 저는 상영이의 그 마음을 넘어선 상태인 것 같아요.

-몸 상태를 말해 본다면.

지금은 저 스스로와 싸워 이겨낼 수 없는 고통까지 온 것 같아요. 저는 어디가 아파서 경기를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느끼는 제 몸의 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 진짜 아프다’ ‘경기 중에도 통증을 느낀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도 말하고 싶어요. 저는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 왔어요. 옛날엔 자신감 하나로 도전했다면 지금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남현희(왼쪽)가 지난달 10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진천=윤성호 기자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 4번의 올림픽에 나갔다. 5번의 아시안게임 출전을 달성한 만큼, 5번의 올림픽에 도전할 생각은 없는가.

사실 올림픽 티켓을… 딸 수 있어요. 자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많이 지쳐 있는 것 같아요. 2013년 출산 이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복귀했고, 1년 1년 참다 보니 햇수로 6년째가 됐는데, 그 안에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어요.

-이를테면 어떤 것들이 힘든가.

후배들과 경쟁에서도 어려움이 있는데, 펜싱 시스템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국제대회가 1년에 10개쯤 있고 국내대회가 6개 이상 있습니다. 그러면 1년에 총 뛰어야 하는 대회는 16개가량이 되는데, 선수가 16개 대회를 뛰며 1년 안에 안 다치면 다행입니다.

20년의 태극마크 세월 동안 남현희의 몸은 너덜너덜해졌다. 남현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만한 나이나 환경이 안 된다”고 했다. “국제대회에 포커스를 맞추면 국내대회를 못 해서 국가대표로 선발될 우려가 있고, 국내대회에 신경 쓰면 정작 중요한 대회 때 몸이 말을 안 들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몸이 안 아픈 상태에서 뛰면 후배들보다 개인전을 잘 하고 단체전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뭐가 정답이라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선수들이 받아들이기엔 힘든 시스템입니다.

제 나이대의 선수들을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따로 마련돼 있으면 조금 더 경기력에 대한 효과를 보탤 수 있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또 핑계라 하거나 ‘자신만 생각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는 쉬운 루트를 통해 대표팀에 들어온 적이 없어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40대 펜싱 국가대표가 탄생하는가 했다.

지금까지 견디기에 지친 부분도 있고, 자신이 좀 없습니다. 그리고 현 체계상 제가 계속해서 후배들과 경쟁을 통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데 사실 너무 어렵습니다(웃음). 모든 것들이 제게 힘들어요. 환경적으로.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부분은, 제 가족들이 저를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줬다는 점입니다. 친정 어머니께서는 제가 아이를 낳자마자 ‘빨리 복귀해라’ ‘실력이 아깝다’ 하시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6년간 저희 친정 어머니가 제 딸을 돌봐주고 계십니다. 저는 그 시간이 미안하고 감사해서 더 잘 하고 싶었어요. 자식이 효도하고 싶은 마음에 대회에 나가서 상금을 욕심내기도 했어요.

남편도 제가 펜싱할 때가 제일 멋있다고, 자랑스럽다고 그렇게 용기를 줍니다. 딸은 ‘왜 나는 엄마랑 떨어져 있어야 하느냐’고 투정도 부리지만, 한살 한살 먹으면서 이제 설득을 당해요. 친정 어머니께서 ‘엄마는 태극마크를 달았고 한국을 대표해야 하는 선수고 그게 직업이라 이렇게 해야 하고…’ 설명을 해 주면 받아들여요. 가족이 고마워요. 6년이면 많이 참았다고 생각합니다. 펜싱을 놓지 않게 해줬어요.

[굿바이 남현희 ②]에서 계속됩니다.

자카르타=이경원 기자, 사진=윤성호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