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정의 패션톡] 나이키 모자가 판매 중단된 결정적 이유

입력 2018-08-26 05:00


‘발라클라바’(balaclava)라는 모자가 있습니다. 머리와 목, 얼굴을 거의 다 덮는 일명 ‘도둑 모자’입니다. 영어 사전을 보니, 방한모라고 해석하네요.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는데 등산, 스키, 오토바이 등을 즐기는 이들이 즐겨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키가 최근 발라클라바를 출시한 일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갱단을 미화했다는 지적이 일었다네요. 급기야 제품 판매도 중단해야 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크게 비판을 받은 사진을 보니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발라클라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나이키가 그 제품을 연출한 방식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얼굴이 검은 편인 남성 모델이 나이키의 발라클라바를 쓰고 있습니다. 팔에는 문신이 보였습니다. 나이키의 이 제품을 비판하는 이들은 제품에 달린 작은 주머니가 권총을 담는 ‘권총집’처럼 보인다고 얘기합니다. ‘흑인 갱단이 쓰는 모자’라는 분위기를 은연중에 풍겼다는 겁니다.



이 제품은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슨이 협업해 만들었습니다. 출시가는 11만원쯤이었고요. 영국 BBC 등 외신은 온라인상의 비판적인 여론을 담은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흑인 사회의 갱 문화를 이용해 돈벌이한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습니다. 인정해서는 안 되는 범죄를 패션 산업으로 끌어들였다는 지적도 일었고요.

나이키는 미국의 풋웨어뉴스(footwearnews)에 최근 밝힌 성명서에서 해당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트레이닝 컬렉션으로 제작된 제품이고, (흑인 모델뿐 아니라) 다른 (인종의) 모델이 제품을 착용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이 제품 출시로)범죄와 갱 문화를 용납하거나 조장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고 덧붙였습니다.

B급으로 취급되던 ‘스트리트 패션’에 도전하는 대형 패션 그룹의 시도는 보기 좋지만, 이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켰을 때만 유효합니다. 누군가 입은 옷이 누군가에게 위협적으로 보여서는 안 될 일입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