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최고령 상봉자 만난, 北 여동생 “믿어지지 않아”…이산가족, 또다시 눈물바다

입력 2018-08-24 17:16 수정 2018-08-24 18:34
우리 측 최고령 상봉자인 강정옥(100·왼쪽) 할머니가 24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여동생 강정화(85)씨를 만나 포옹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혹시 형님이 찾아오면 어떡하냐’는 어머님의 말씀 때문에 이사를 일부러 안 갔다.”

장구봉(82)씨는 24일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 단체상봉에서 형 장운봉(84)씨를 만났다. 장구봉씨는 전날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취재진과 만나 3대가 속초를 떠나지 않은 이유를 어머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밝혔다.

6·25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 6월에 장구봉씨는 어머니, 형과 함께 지금의 속초인 양양군 속초읍 논산리에 살고 있었다. 전쟁이 발발 후 형 장운봉씨는 이웃집 교사 등 동네사람 몇과 피난을 나섰다. 이후 다른 사람들은 1·4후퇴 때 돌아왔는데 장운봉씨와 교사만 없었다. 돌아온 동네사람들이 공습을 받았고, 그때 “장운봉씨가 죽은 것 같다”고 설명했고, 장구봉씨와 가족들은 이 말을 믿었다.

형 장운봉씨는 1980년 부재자 일절 정리 기간 대 사망처리가 된 상태였다. 장씨 형제의 어머니는 1999년에 세상을 등지면서 “생사람 이별했는데 살았으면 언젠가 연락이 올 거고, 죽었으면 연락이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어머님의 뜻대로 장구봉씨 가족은 속초에 살면서 혹시나 하며 형을 기다렸다. 장구봉씨는 “떠나지 않는 게 부모다. 어떠한 경우라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니까. 살아있는 걸로 생각하고, 그렇게 사신거죠”라며 “그래서 만나자마자 할 이야기가 어머니 이야기지 뭐 그쪽에서도 어머니 안부 물을 것이고, 어머니 그동안 과정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 15분부터 진행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에서는 첫날 단체상봉이 열렸다. 남측 가족들은 3시부터 긴장되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북측 가족들을 기다렸다. ‘반갑습니다’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북측 가족이 들어오십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남측 가족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을 바라봤다.

이때 장구봉씨는 “우리 자리가 제일 좋다”라며 농담도 했지만 긴장된 표정으로 문 쪽을 주시했다.

단체상봉이 본격 시작되자 이산가족 면회소는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우리 측 최고령 상봉자인 강정옥(100·가운데) 할머니가 24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여동생 강정화(85·가운데)씨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우리 측 최고령 상봉자인 강정옥(100) 할머니도 북측 여동생 강정화(85)씨를 만났다. 한복 차림의 강정화씨가 들어서자 강 할머니의 동반 가족들이 일제히 알아보고 “저기다! 저기”라고 외쳤다. 강 할머니는 강정화씨를 꼭 안고, 볼을 비볐다. 이어 강 할머니와 함께 간 동생 강순여(82)씨가 “언니 막내우다”라고 외쳤다. 강정화씨는 “아이고 순여!”하며 울먹였다.

강 할머니는 실감나지 않는 듯 여동생 강정화씨를 응시하며 “다시 만나면 앞으로 만나면 인숙하지만 오늘은 처음 만났으니까”라고 말했다. 강정화씨도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화답했다. 강 할머니는 “정화야, 정화야 아이고 정화야 안아줘야지. 아이고 정화야 고맙구나”라며 동생의 이름을 또 부르고 부르며 그리웠던 마음을 표현했다.

북측에 있는 이모인 신남섭(81) 할머니를 만난 조카 김향미(53)·숙연(49)·주연(47)·소연(44)씨는 특별한 선물까지 준비해왔다. ‘보고 싶었던 이모님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2018년 8월 24, 25일’이라는 글귀가 적힌 펼침막을 준비해 왔다.

김주연씨는 “이모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까봐 준비해 왔다”라고 설명했다.

신 할머니가 조카들이 있는 테이블 근처로 오자 4자매는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신 할머니 주변을 에워쌌다. 자매들은 “어머 어떻게 해, 엄마랑 똑같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맏이인 김향미씨는 감정이 북받친 듯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신남섭 할머니는 언니이자 4자매의 모친인 신중섭씨의 소식을 물었다. 신중섭씨는 200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까지 북에 있는 신남섭 할머니 등을 그리워했다.

신남섭 할머니는 6·25전쟁 때 가족들이 나눠 피란을 떠났고, 전쟁의 혼란 속에 헤어져 이산가족이 됐다.

이날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가 열린다. 북측 방문단과 우리 측 상봉단이 만난다. 첫날에는 단체상봉과 우리 측 주최 환영만찬이 열리고, 둘째 날엔 개별 가족끼리 객실에서 개별상봉을 한 후 점심까지 함께 먹는다. 이후 또 단체상봉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 날엔 작별상봉 및 공동점심을 하고 일정을 마무리 한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