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특별대표 임명으로 대북 통로 부활, 협상력엔 물음표

입력 2018-08-25 04:01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티브 비건 신임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선임을 발표하고 있다. 미 국무부 유튜브 캡처

스티브 비건 신임 대북정책 특별대표 임명은 ‘공석’이었던 미국의 대북 정책 전담 통로가 부활했다는 의미가 크다. 동시에 미국이 북·미 비핵화 협상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사전 포석으로 비건 특별대표를 내세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 주 북한을 찾아 비핵화 문제를 협의한다고 밝혔다. 비건 신임 특별대표도 동행하게 된다. 이번 방북은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으로, 구체적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포드 자동차의 비건 국제담당 부회장을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 2월 조셉 윤 전 특별대표의 은퇴 이후 공석이었다.

비건 특별대표의 임명은 미 트럼프 행정부에서 비핵화 협상 등 대북정책을 전담하는 통로가 부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셉 윤 특별대표 은퇴, 수전 손튼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 사임 등으로 대북문제를 이끄는 공식 라인은 모두 비어있었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는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막후에서 비핵화 실무협상을 이끌었다. 비건 특별대표는 앞으로의 북·미 비핵화 협상의 실무를 전담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사전 포석으로 비건 특별대표를 내세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는) 아마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긴 과정이 될 수도 있다”며 “그러나 나는 오래 걸리는 과정에도 익숙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비핵화 협상의 장기화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폼페이오 장관도 “우리가 가야할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걸릴지 모른다”며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존 제재에 대한 지속적인 시행을 배경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장기화를 불가피한 수순으로 인정하고, 지속적이며 안정적으로 협상을 관리하기 위한 인사로 비건 특별대표를 낙점했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6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AP뉴시스

또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직업’으로 꼽히는 미국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는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북·미 비핵화 협상 상황을 일일이 챙길 여력이 없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 이란 핵문제 등 폼페이오 장관이 관여하고 해결해야 하는 이슈가 너무 많은 상황이다. 북핵 문제만큼은 비건 특별대표가 책임지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24일 “비건 특별대표 임명은 미국도 중장기적으로 오래 갈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미리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며 “또 폼페이오 장관이 다른 중요한 이슈들에 집중하기 위한 행보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비건 특별대표의 대북협상력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안보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전문가이지만 러시아통으로 대북문제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의 학습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비건 특별대표는 2001∼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호흡을 맞췄다. 지난 3월 맥 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사임 이후 라이스 전 장관의 추천을 받아 유력한 후임자 후보로도 거론됐다.

비건 특별대표는 과거 러시아를 상대로 한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주로 다뤘기 때문에 북핵 문제 전문성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비건 특별대표가 1990년대 ‘제네바 합의’의 이행 과정에 관여한 바 있어 북핵 문제에도 전문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박 교수는 “비건 특별대표가 북한이나 북핵 문제에 대한 경험이 없어 학습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며 “그런데 굉장히 중요한 현 시기에 그만큼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정도 비핵화 협상이 된 상태에서 중간에 새롭게 들어왔다. (학습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며 “북한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건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비건 특별대표 선임과 관련해 “비중 있는 분이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방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방북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게가 실려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