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70대 귀농인이 벌인 총기 난사사건은 자칫 더 큰 참사를 발생할 뻔 했던 정황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부상당한 사찰 승려와 숨진 면사무소 공무원뿐 아니라 마을 이장도 범행 표적이었던 사실이 경찰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봉화경찰서에 따르면 범인 김모(77)씨는 마을이장을 첫 번째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가 실패한 뒤 인근 사찰로 가 승려 범행 후 다음 범행 장소인 소천파출소로 갔다.
마침 근무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하고 파출소가 비어 있는 상태여서 범행을 포기하고 소천면사무소로 향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조사 결과, 김 씨의 첫 번째 범행 표적은 이 마을 이장이었다.
마을 이장은 김 씨가 사찰 승려에게 총을 쏘기 전인 21일 오전 8시 15분쯤 김 씨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지만 당시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마을 이장은 “범인 김 씨가 전화를 걸어 와 ‘지금 좀 만날 수 있느냐'고 했지만 ‘팔을 다쳐 병원에 가야 되니까 오후에 만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며 “그런데 그날 오후 병원에 다녀온 뒤 총기사건이 발생한 걸 알고 앞이 깜깜해지고 아찔했다”고 말했다.
마을이장은 “혹시라도 그때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 요즘에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 씨는 21일 오전 7시 50분 소천파출소에서 총기를 찾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뒤 오전 8시 15분 1차 범행 표적으로 삼았던 마을 이장에게 전화했다가 실패하자 자신의 집 마당에서 20여발이 넘는 사격연습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씨는 이후 오전 9시 15분쯤 사찰로 가서 승려에게 엽총으로 총상을 입힌 뒤 9시 27분쯤 소천파출소에 도착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인근 면사무소로 이동, 공무원 2명을 엽총을 쏴 숨지게 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만약 김 씨가 마을 이장도 만났고 당시 파출소에서 직원이 근무했다면 피해자는 더 많았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봉화경찰서는 23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김 씨를 구속했다.
대구지법 안동지원은 이날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가 명백하고 중대하며 죄질이 매우 불량해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판시하며 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경찰은 논란이 된 김 씨의 집을 수색하는 등 철저하게 보강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유해조수 포획 허가를 받은 것이 범행을 염두에 둔 것인지 확인하고 있다”며 “범행의 최초 계획 시기와 추가 범행 정황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엽총 난사사건으로 순직한 고(故) 손건호(47) 사무관과 고(故) 이수현(38) 주무관의 영결식이 24일 오전 9시 봉화군청에서 군청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은 고인들에 대한 약력보고와 조사, 추도사,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으며 유족 20여명과 동료 직원 5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엄태항 군수는 조사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에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으며 동료를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동료 직원 최은지 주무관이 “고인들이 못다 핀 꽃의 모습으로 우리 곁을 떠나지만 결코 떠나지 않았음을 선배, 동료, 후배 공직자들은 알고 있다”며 “우리 가슴에서 영원히 빛날 보석이 될 것”이라며 추도사를 읽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22일부터 경북도청과 봉화군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고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공직자와 도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봉화=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