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강타할 것으로 알려진 태풍 솔릭도 70여년 만에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는 이산가족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에 참석하는 우리 측 상봉단은 북측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24일 오전 8시 50분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금강산을 향해 출발했다.
북측의 형을 만날 예정인 목원선(85) 할아버지는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소감을 말했다. 형을 만날 생각에 이날 오전 2시 30분에 눈을 뜬 목 할아버지는 일어나자마자 태풍 경로를 확인했다고 한다. 동행하는 동생 원구(83)씨는 “꿈만 같지 뭐”라고 말했다.
4형제 중 둘째인 목 할아버지는 1950년 7월 이번에 만날 북측의 큰형 원희(86)씨가 죽은 줄 알았다. 시장에 쌀을 사러갔던 형은 인민군에 강제징집 됐다. 형과 함께 끌려갈 때 있었다는 친구는 미군 폭격을 맞아 혼란 속에 자신은 돌아왔지만, 형 원희씨는 죽었다고 설명했다.
목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상봉신청도 하지 않았다. 형 원희씨가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68년여 만에 북녘의 형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목 할아버지는 형이 끌려가고 이듬해 18세의 나이로 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그때 아마 우리 형(목원희)하고 총부리 마주잡고 뭐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때 끌려갔으면 저쪽도 전부 전방에 내보냈을 것 아니에요”라며 “하여간 이제 살아있다고 그러니 기가 막힐 노릇이죠”“라고 말했다.
그런데 형 목씨는 ‘목원희’라는 이름에서 ‘김인영’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 상봉의뢰인의 이름이 김인영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목 할아버지를 비롯한 형제들은 형의 개명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있다.
북측의 언니 강호례(89)씨를 만나는 강두리(87) 할머니는 “반갑고 기쁜 사람들 만나는데 비가 왜 이리 오냐”며 굵어지는 빗방울이 행여 상봉 일정에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했다.
전날 태풍 솔릭이 상봉행사가 열리는 금강산 일대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예보가 나와 이산가족 상봉행사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산가족들도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산가족 상봉행사 일정 진행은 계획대로 추진됐다. 출발을 앞두고 속초엔 비만 내렸고 바람은 거의 없었다.
이날 오전 설레는 표정을 지으며 버스 탑승 준비에 여념이 없는 상봉단의 손엔 북녘 가족들을 위한 선물들이 가득했다.
상봉단은 이날 오전 8시 30분 버스탑승 예정이었지만 오전 6시 30분부터 아침식사를 하고, 가족들을 만날 일정 준비에 힘썼다. 빨리 식사를 마친 후 선물 등을 챙겼다.
고령인 우리 측 상봉단의 건강상태는 큰 문제가 없다. 전날 야간회진을 했던 신정리 서울적십자병원 내과 전공의는 “전체적으로 양호하신 편이었다.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해 허리 아프신 분들이 조금 있으셨고, 상봉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긴장되신다는 정도였다”며 “다만 전체 회진 결과를 보면 인후통이나 가벼운 감기증상, 소화불량 등 경미한 증상 갖고 계신 분들은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2회차 상봉행사에서 우리 측 최고령 상봉자인 강정옥(100) 할머니는 “고맙습니다. 동생지간을 만나러 갑니다”라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북에 사는 여동생인 강정화(85)씨를 만날 예정인 강 할머니는 출발을 앞두고 내내 밝은 표정으로 상봉의 기쁨을 드러냈다. 강 할머니는 전날엔 제주도에서 올라오며 멀미로 고생해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속초=공동취재단,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