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고은 재판에는 이 땅 모든 여성의 미래가 걸렸다”

입력 2018-08-23 19:55


고은(85) 시인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이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여성들이 공개적인 반격에 나섰다.

고 시인의 성추행을 풍자한 시를 썼던 최영미(57) 시인은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재판은 그의 장례식이 될 것”이라며 고 시인의 반성을 촉구했다. 이 기자회견은 350여개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구성한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미투시민행동)’이 주최했다.

최 시인은 “분명한 사실은 고은 시인이 술집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을 내가 목격했다는 것”이라며 “오래된 악습에 젖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불쌍한 사람의 마지막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민족문학의 수장이라는 후광이 그의 오래된 범죄행위를 가려왔다”고 했다. 그는 “이 재판에는 개인의 명예만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여성들의 미래가 걸려있으므로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다”며 “이 재판은 그의 장례식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고 시인은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법에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 시인과 박진성 시인을 상대로 각 1000만원, 이를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 2명에게는 20억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냈다. 성추행 의혹이 허위이기 때문에 정정 보도를 하고 자기가 입은 명예훼손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은 최 시인이 계간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괴물’로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이 시에서 최 시인은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 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라고 썼다.

미투시민행동은 “고은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본인 자신”이라며 “고은은 당장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멈추고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을 언급하며 “우리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무고나 명예훼손 역고소는 늘 있어왔다”며 “이는 피해자들을 입막음 시키고 고통을 주며 피해자지원단체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맡은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고은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며 합당을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며 “더 이상 예술성이라는 미명 하에 여성에 대한 성추행, 성희롱이 용인되지 않도록 이 사건 실체를 밝히고 치밀하게 법리를 전개해 꼭 승소하겠다”고 밝혔다.

시민행동은 ‘고은 시인의 성폭력 피해자와 목격자 제보센터’를 개설해 제보를 받기로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