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 별안간 엽총을 든 70대 남성이 들이닥쳤다. “손 들어”라고 외친 뒤 총을 난사했고 공무원 두 명이 사망했다. 장전된 총알은 총 5개. 추가 인명 피해자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 출동은 늦어졌다. 그가 면사무소에 침입하기 전 한 암사에 들러 한 승려에게도 총격을 가해 그 쪽으로 출동한 까닭이었다. 그 순간 면사무소에 있던 50대 남성이 나섰다. 범인을 오랜 몸싸움 끝에 제압했고, 총과 칼을 빼앗았다. 사건을 회상하며 “섬뜩했다”는 그는 의연하게 당시 상황을 전했다.
건축일을 하는 박종훈(53)씨는 소천면 경로당 보수작업과 관련된 견적 때문에 사건 당일 면사무소를 찾았다고 했다. 휴가철인 탓에 평소보다 직원이 적은 듯 했다고 그는 말했다. 정문으로 들어가니 고(故) 손건호(48·민원담당 행정6급) 계장이 바로 보였다고 했다. 평소에 안면이 있었기에 일처리를 마친 뒤 인사를 하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면사무소 왼쪽에 위치한 복지계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손 계장이 서있던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했다. 그는 “(소리가 난) 옆 쪽을 보니 조금 전까지 보이던 손 계장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손 계장이 사라진 자리에 기다란 엽총을 든 남성이 서있었다. 손 계장이 그가 쏜 총에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박씨는 “처음에는 공포탄으로 위협하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며 “(손 계장을 쏜 범인의) 총구가 옆 사람을 향하는 걸 보니 아차 싶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당장 총을 빼앗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씨는 범인에게 직진했다. 안타깝게도 그가 범인을 덮치기 직전 발사된 총알은 故 이수현(38·민원담당 행정8급)씨를 향했다. 박씨는 곧장 총열을 움켜쥐었다고 했다. 범인이 저항하면서 또 다시 두 발이 발사됐지만 다행히 빗나가 유리창을 관통했다. 남은 한 발은 총에 남아있었다.
박씨는 총을 빼앗아 멀리 던졌다. 그리고 면사무소 안에 있는 직원들에게 “빨리 와서 (범인을) 잡으라”고 소리쳤고, 근처에 있던 직원 1명이 달려와 함께 범인을 넘어뜨렸다고 한다.
그 때 “손에 칼이 있다”는 외침이 들렸다고 했다. 저항하던 범인이 총을 빼앗기자 바지 속에 감추고 있던 길이 10cm 칼을 뽑아든 것이다. 박씨는 재빨리 칼을 빼앗고, 그가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수 없도록 제압했다고 한다. 이후 경찰에 인계했다. 경찰은 박씨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수여할 계획이다.
경찰에 따르면 4년 전 봉화로 귀농한 엽총 사건 범인 김모(77)씨는 2년 전부터 이웃인 승려 임모(48)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상수도 문제, 쓰레기 소각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김씨는 승려 임씨가 거주하는 암자로 찾아가 오전 9시 13분쯤 총을 발사했다. 임씨는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풀 숲으로 도망치자 실탄 5발을 재장전해 3.8㎞ 거리 떨어진 소천면사무소로 향했다. 오전 9시 31분쯤 면사무소 1층으로 들어가 “손들어”라고 말한 뒤 공무원들을 향해 엽총 4발을 발사했다. 경찰은 임씨와 주된 다툼 원인이었던 상수도 문제 등과 관련된 민원처리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총에 맞은 손 계장과 이 씨는 사망했다.
뉴시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