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이 밝았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대표팀은 23일 밤 9시 이란과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펼친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북한, 미얀마와 경쟁했던 조별리그 F조에서 1위를 차지하고 16강에 올랐다.
김 감독은 앞서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를 선발카드로 꺼내들지 않았다. 이승우는 바레인과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교체 출전했고, 말레이시아전에서는 아예 출전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에 0대 2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이승우 카드를 외면했다.
단 한 번도 이승우를 선발로 내세우지 않은 점은 의외였다. 이승우는 장거리 이동을 소화했지만 다른 공격수들에 비해선 체력적으로 휴식을 충분히 취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소속팀 헬라스 베로나에서 유베 스타비아와의 컵 대회에 선발 출전해 82분을 소화한 것을 이래로 바레인과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각각 정규시간 22분과 16분을 뛰었다. 그가 치른 이달의 실전경기 전부다. 다만 이승우는 아시안게임을 소화하며 감기 몸살로 컨디션 난조를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공격자원들인 손흥민과 황의조, 나상호 등은 대표팀 합류 직전까지 소속팀에서 리그 경기를 소화했다. 황희찬만 2018 러시아 월드컵 일정을 소화한 후 오스트리아리그로 돌아갔지만 팀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고 아시안게임에 합류한 상황이다. 아시안게임은 17일 동안 결승까지 7경기를 소화해야하는 굉장히 타이트한 일정이다.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에 따른 로테이션 역시 필수적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동안 이승우의 선발 출전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은 그의 몸 상태가 정상적이 아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란을 상대로 이승우가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진다. 황의조는 2~3일 간격으로 치러지는 지난 조별예선 3경기에서 모두 선발 출전했기 때문에 체력 관리가 필요한 지라 후반 조커카드로 투입될 전망이다. 황의조는 3경기 4골을 몰아치며 김 감독의 신뢰에 보답했다. 다른 와일드카드 자원인 손흥민과 조현우 역시 대표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한번만 미끄러지면 탈락인 토너먼트에선 체력적 부담을 감수하고 선발로 출전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팀의 6대 0 대승에 가려졌지만 이승우의 지난 바레인 1차전 활약이 다소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사실이다. 김 감독은 5대 0으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전반전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던 황의조-나상호 투톱 대신에 이승우와 황희찬을 투입하며 다른 공격루트 찾기에 나섰다. 이승우는 특유의 세밀한 볼터치를 가져가며 팀의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고군부투 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진 못했다. 키르기스스탄 전에서도 기대했던 드리블 능력에 따른 인상적인 돌파를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몸을 사리지 않는 상대의 거친 수비에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이란 U-23 대표팀은 비록 A대표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탄탄한 수비조직력이 강점인 팀이다. 비록 조별리그에선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0대 0 무승부를, 북한을 맞아 3대 0 대승을, 미얀마에겐 0대 2 패배를 당하며 알 수 없는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토너먼트에 들어선 이상 그들 역시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임할 것이 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앞서 한국이 고전했던 말레이시아와 키르기스스탄 보다 더욱 강력한 수비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단 20명 전원이 모두 자국리그에서 뛰며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 역시 그들이 가진 강점 중 하나다.
특히 에이스 손흥민를 향한 집중 견제가 예상되는 만큼, 이승우의 활약이 절실하다. 한국은 함께 아시안게임 공동 최다우승(4회)인 이란을 넘더라도 8강에선 또 다른 우승후보 우즈베키스탄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수비적인 전술로 나온 그들의 밀집수비를 분산시키며 손흥민 이외의 카드가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승우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