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임신부 배려좌석은 의자부터 바닥까지 눈에 띄는 핑크색으로 돼 있다. 하지만 정작 임신부들에게는 임신부 배려석이 ‘그림의 떡’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임신부 배려석을 점령한 얌체 승객들 때문이다.
부산시는 임신부가 힘겹게 서서 가고 얌체 승객이 편하게 앉아서 가는 상황을 근절하기 위해 임신부 배려석을 업그레이드했다. 무선발신기를 가진 임신부가 지하철에 타면 좌석에 달린 수신기에서 신호를 받아 핑크빛으로 불빛이 깜박이는 ‘핑크라이트’ 좌석이다. 부산시는 23일 도시철도 3호선에 운영 중인 ‘핑크라이트’ 좌석을 1호선까지 확대 운영한다고 밝혔다.
핑크라이트 좌석에는 원격 신호를 감지하는 비콘 수신기가 달려 있다. 이 수신기는 무선발신기가 가까이 다가오면 불빛과 음성 안내로 임신부 탑승을 알린다. 부산도시철도에서 나눠주는 열쇠고리 모양의 무선발신기에는 핑크라이트 좌석과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치가 탑돼 있다.
핑크라이트 좌석은 임신부에게도, 승객에게도 편리한 시스템이다. 임신부는 배려석에 앉고 싶어도 다른 승객이 좌석을 차지하고 있을 경우 먼저 양보를 요청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핑크라이트가 반짝이면서 안내해주면 임신부는 굳이 자신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더라도 배려석에 앉을 수 있다. 임신부 배려석에 앉아있던 승객이나 주변 승객들도 임신부 탑승 사실을 알게 돼 자연스럽게 좌석을 양보할 수 있다.
핑크라이트 좌석은 2016년 부산과 김해 간 경전철에 처음 도입됐다. 반응이 좋자 지난해 말 부산도시철도 3호선으로 확대했고, 이번에는 1호선까지 도입되는 것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범운영을 거친 뒤 9월 21일부터 1호선에도 핑크라이트 좌석을 운영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부산도시철도 2호선과 4호선까지 핑크라이트 좌석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는 2, 4호선에도 핑크라이트 좌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임신부들이 핑크라이트 무선발신기를 받을 수 있는 장소도 1호선 서면역과 부산역으로 추가하는 등 점차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핑크라이트를 서울과 수도권 지하철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서울 지하철은 각 차량마다 3~4개의 임산부 배려석이 운영되고 있지만 임산부가 임신부 배지를 눈에 띄게 달고 있어야 승객들이 임신부 탑승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마저도 다른 승객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임신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초기 임신부는 물론이고 만삭의 임신부가 타도 핑크 좌석에 앉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임신부 배지를 노출해야 하는 것에 대한 임신부들의 거부감도 적잖다. 핑크라이트처럼 ‘말이 필요 없는 신호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