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엽총 난사사건, ‘계획범죄’일 가능성 셋

입력 2018-08-22 17:54 수정 2018-08-22 17:56
22일 경북 봉화경찰서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경찰관이 전날 소천면사무소에서 발생한 '공무원 엽총 살해 사건' 때 사용한 엽총으로 범행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뉴시스

21일 경북 봉화군에서 엽총으로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부상을 입힌 범인이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봉화경찰서는 대회의실에서 전날 발생한 엽총 난사사건 수사상황을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4년 전 봉화로 귀농한 김모(77)씨는 2년 전부터 이웃인 승려 임모(48)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상수도 문제, 쓰레기 소각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김씨는 승려 임씨가 거주하는 암자로 찾아가 오전 9시 13분쯤 총을 발사했다. 임씨는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풀 숲으로 도망치자 실탄 5발을 재장전해 3.8㎞ 거리 떨어진 소천면사무소로 향했다. 오전 9시 31분쯤 면사무소 1층으로 들어가 “손들어”라고 말한 뒤 공무원들을 향해 엽총 4발을 발사했다. 경찰은 임씨와 주된 다툼 원인이었던 상수도 문제 등과 관련된 민원처리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총에 맞은 손건호(48·민원담당 행정6급) 계장과 이수현(38·민원담당 행정8급)씨는 사망했다.

경찰은 계획적 범행으로 의심하고 있는 이유를 세가지로 분류해 설명했다.

22일 경북 봉화군청 대회의실에 전날 엽총 난사 사건으로 숨진 손건호(왼쪽) 사무관 및 이수현 주무관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져 있다. 뉴시스

◇ 범행 당일, 영치해둔 엽총 출고

김씨는 범행 당일 21일 오전 7시 50분 소천파출소에서 보관 중이던 엽총을 출고했다. 평소 임씨와 골이 깊어 그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으로 총기를 의도적으로 출고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자신의 그랜저 차량을 몰고 암자 입구에서 임씨를 기다렸다. 9시 13분쯤 귀가하던 임씨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엽총을 발사했다. 임씨는 어깨에 부상을 입고 인근 숲으로 피했다. 2발을 더 발사했지만 다행히 빗나갔다.

범인이 사용한 엽총. 뉴시스

◇ “김씨가 위협한다”며 경찰에 접수한 두 번의 진정서

앞서 임씨는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김씨의 행동을 제지해달라는 취지였다. 진정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김씨가 도끼를 들고 찾아와 임씨를 위협했다. 하지만 경찰은 추후 조사과정에서 임씨가 “직접 위협한 것이 아니라 김씨 손에 도끼가 들려있었을 뿐”이라고 정정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에도 진정서가 접수됐다. 김씨가 총으로 쏴죽이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때도 경찰은 “임씨가 김씨에게 직접 들은 것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종결시켰다.

22일 경북 봉화경찰서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경찰관이 전날 소천면사무소에서 발생한 '공무원 엽총 살해 사건' 때 사용한 엽총으로 범행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뉴시스

◇ 아로니아 재배하는 농부가 범행 전까지 13차레 총기 출고

김씨는 고향인 봉화로 2014년 귀농했다. 이곳에서 그는 아로니아를 재배했다. 그러다 갑자기 한 달 전 쯤 총기를 구입하고 소지허가를 받았다. 지난달 초 봉화군에서 유해조수 포획허가를 받은 뒤 같은달 20일 주소지인 수원중부경찰서에서 산탄식 엽총 소지허가까지 받았다. 25일에는 엽총을 구입해 소천파출소에 영치했다. 이후 범행전까지 13차례에 걸쳐 총기를 출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같은 일련의 행동이 범행을 염두에 둔 것 인지는 수사 중”이라며 “범행 당일은 계획적으로 출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뉴시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