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지 않는 버스 창문 사이로 남북 이산가족들은 입모양과 손바닥으로 간신히 대화를 주고 받으며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했다. 남북 가족 사이에 놓인 투명한 유리창은 혈육 간 따뜻한 온기와 가슴 사무치는 마지막 이별의 말도 가로막았다.
60년 넘게 서로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남북 이산가족은 22일 작별상봉 종료를 앞두고 탄식과 울음을 쏟아냈다. 지나가는 취재진에게 남은 시간을 물어본 윤흥규(92) 할아버지는 ‘2분 남았다’는 답변에 “하…”라며 탄식했다.
오후 1시 정각 “이것으로 모든 상봉 일정을 종료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한신자(99) 할머니는 한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던 북쪽의 두 딸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남쪽으로 가는 버스를 탑승해야 할 시각이 다가왔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 모녀는 상봉장 앞에서도 쉽게 이별하지 못했다.
상봉장 안에서 기다리던 한 할머니의 두 딸은 버스에 탑승한 가족을 배웅해도 된다는 안내가 나오자마자 한복 치마를 발목 위까지 걷어 올리고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9번 버스 뒤쪽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는 창문을 두드리며 두 딸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두 딸은 “어머니, 어머니, 건강하시라요”라며 유리창 앞에서 오열했다.
한 할머니도 좌석에서 일어선 채로 창문을 두드리며 “울지 마라. 잘 있어라”며 울었다. 키가 작아 손이 버스 창문에 닿지 못하자 남북 당국자들이 사다리 위로 두 딸을 올려줬다. 세 모녀는 야속한 창문에 서로 손바닥을 마주한 채 입모양으로만 간신히 소통하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남쪽 오빠 박기동(82) 할아버지를 배웅한 박선분(73)씨는 버스 앞에서 손을 흔들며 “통일이 되면 다시 한 번 더 만나요. 오빠, 통일의 그날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라고 소리쳤다. 선분씨는 버스가 출발하자 버스를 따라가면서 “오빠, 다시 만나요. 건강하세요.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나요”라고 울먹였다.
최동규(84) 할아버지의 북측 조카 박춘화(58·여)씨는 버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 기막힌 게 어딨니, 통일되면 이런 거 안 해도 되잖아. 이게 뭐야, 이게!”라며 울부짖었고, 이관주 할아버지(93)의 조카 이광필(61)씨는 창문이 열리지 않아 대화가 통하지 않자 자신의 손바닥에 “장수하세요”라고 적어 창문에 댔다. 그리고는 아이처럼 펑펑 울며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