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슈의 매력, 계속 전해드릴게요” 韓 청년 고수 4인방의 도전

입력 2018-08-22 14:39 수정 2018-08-22 15:55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한국 우슈 대표팀의 이하성 서희주 조승재 이용문(왼쪽부터)이 22일(한국시간) 경기장이 있는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엑스포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우슈의 한없는 매력을 전달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애쓰겠다고 했다. 걸을 때 목발을 짚어야 하는 서희주는 힘을 내서 잠시 바로 섰다. 자카르타=윤성호 기자

화려함을 뽐내면서도 무섭도록 절도 있다. 쉴 틈 없이 반복되는 도약과 회전의 무술이 추구하는 건 아름다움의 정수다. 중국 전통 무술을 표현하는 스포츠, 우슈 이야기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한국 우슈 투로 국가대표팀의 20대 4인방을 22일(한국시간) 만났다. 이하성(24·남자 투로 장권), 서희주(25·여자 투로 검술 창술), 조승재(28·남자 투로 도술 곤술), 이용문(23·남자 투로 남권 남곤). 각자의 아시안게임을 마무리한 이들 넷은 대표팀 동료의 태극권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엑스포홀을 찾았다.

지난 20일 무릎을 크게 다쳐 펑펑 울던 서희주는 목발에 의지한 모습이었다. 개회식 다음날 오전에 결선을 치르게 돼 있던 서희주와 이하성은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 소식을 전해줄 선수들로 기대를 모았었다. 둘의 경기가 아쉽게 끝난 뒤, 지난 21일 조승재와 이용문이 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승재는 은메달, 이용문은 동메달이었다.

각자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마친 한국 우슈 대표팀의 이하성 서희주 조승재 이용문(왼쪽부터). 자카르타=윤성호 기자

-모두 대회를 마무리했다. 누군가는 기뻤고, 누군가는 아쉬웠을 듯하다. 시합 후에 어떻게 지냈는가.

이하성 “착지 실수를 한 그날 밤에는 정신이 없었다. 시합 도중에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계속 떠올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내 자신에게 실망했지만 지금은 극복했다.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세밀하게 경기를 분석, 연구하겠다. 다음에는 절대 이번과 같은 실수가 없게 하겠다.”

서희주 “무릎을 다친 당일에는 너무 믿기지가 않고 꿈만 같았다. 힘든 것도 못 느낄 정도였다. 천장만 계속 보며 멍해 있었다. 걱정해 주는 연락도 많이 왔는데 아무 답도 해주질 못했다. 다음날 다시 경기장에 왔는데 그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 시합을 뛰는 장면이 상상이 된 것이다. 지금은 많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이를 계기로 반성하고 몸 관리를 잘 해서 발전하려 한다.”

이용문 “어제 메달을 딴 다음에 저녁에 한국 대표팀의 산타(우슈의 겨루기) 경기가 있었다. 잠깐 좋아하다가 저녁에는 열심히 응원을 했다. 다들 함께 고생했는데, 나만 좋다는 티를 내긴 싫었다. 긴장한 채로 경기에 임했지만 결과가 아쉽진 않다. 최선을 다했고, 그에 맞는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조승재 “은메달은 소중한 성적이지만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출전이기 때문에 의미가 컸던 대회였다. 나는 지난 2차례의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있었지만, 다른 이유로 출전하지 못했었다. 경기를 만족스럽게 펼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돌이켜 보니 시합할 때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 살짝 아쉽다.”


-우슈에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이하성 선수는 어렸을 때 침대에서 자꾸 덤블링을 하니 어머니께서 우슈 체육관에 보냈다고 들었다.

이하성 “맞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유난히 성룡을 좋아하신 영향도 있다.”

서희주 “나는 아버지께서 관장으로 계신 우슈 체육관에 어렸을 때부터 계속 놀러가면서 우슈를 접하게 됐다. 자연스레 우슈를 배우고 싶어졌었다. 우슈를 배우고 싶다고 하자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셨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혹독하게 가르쳐 주셨다(웃음).”

이용문 “아버님께서 쿵푸를 하셨다. 사실은 형이 먼저 우슈를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형의 건강을 위해 우슈를 시키신 것이었다. 형을 따라다니다가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다.”

조승재 “초등학생 때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이소룡이 나오는 영화를 빌려보게 됐다. 너무 재미있어서 나머지 중국 무협영화들을 계속 찾아 봤다. 이연걸과 성룡이 나오는 영화들을 접하며 어렸을 때부터 중국 무술의 매력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화면 속 그들처럼 움직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이 우슈 입문의 계기가 됐다.”

-단지 멋지다는 생각만으로 아무나 표현할 수 있는 동작들은 아닐 것이다. 몸이 날래고 소질들은 있었던 편인가.

이하성 “어렸을 때부터 혼자 침대에서 덤블링을 많이 했다고는 한다. 즐기면서 하고 있다.”

서희주 “오히려 국가대표로서 훈련할 때보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 배울 때 너무 고생했다고 생각한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웃음).”

이용문 “어렸을 때에는 멋모르고 했다. 어떻게 하는 동작인지도 모르고, 표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없었다. 우슈의 여러 종목들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가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나만의 생각이 생겨나면서, 우슈를 계속 배워가고 있다.”

조승재 “나는 재능이 없었던 편이다(모두들 웃음). 우슈를 함에 있어서 센스가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같이 운동을 했던 선수보다 센스가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해서, 누구보다도 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모두 우슈의 국가대표다. 우슈의 고수라면 고수인데, 각자가 접하고 느껴온 우슈란 어떤 것인가. 우슈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하성 “우슈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서희주 “공감한다. 우슈는 도약도 많고 무기술이 다양하다. 정말로 배워도 끝이 없다. 그래서 조금씩 발전해 나갈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이용문 “이하성의 말이 맞다. 열심히 해서 주변에서 늘었다는 말을 들어도, 정작 본인은 계속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우슈에서 완전하게 ‘내가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슈는 그런 것이다.”

조승재 “우슈를 계속 해 왔지만, 그 정의는 잘 내려지지 않는 것 같다. 멋있는 것, 화려함 정도로 단순히 설명해 보고 싶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각적인 화려함에 매료돼 시작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우슈는 즐거운가.

모두 “즐겁다.”

-어떤 때 가장 즐거운가.

이하성 “연습했던 난이도의 동작들을 성공했을 때, 성취감. 그 성취감이 즐거움이다.”

조승재 “난이도 있는 동작을 성공하는 기쁨도 있지만, 연기를 발견하는 순간도 있다. 우슈 선수들은 스스로 동작 프로그램을 짜고, 그 새로운 프로그램을 연습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스스로 나아졌다고 느꼈을 때 가장 즐거움을 느낀다.”

이용문 “공감한다. 내 경우는 남권을 하는데, 남권은 기합을 지르는 때가 있다. 기합을 지르다 보면 시합을 뛰거나 훈련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된다. 그때는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서희주 “대회를 치를 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좋다. 도복을 입은 영상을 볼 때 기분이 좋은 때가 있다. 시합을 잘 뛴 영상을 계속 본다. 훈련이 힘든 때마다 내가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경기 영상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사람들은 짧은 순간 화려한 연기만 우슈로 본다. 그 연기를 하기까지 우슈 선수만의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이하성 선수는 야식을 자제하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말을 했었다.

모두 “공감한다. 몸이 무거우면 안 된다.”

서희주 “이하성이 이번에 대회를 마친 뒤 ‘야식 못 먹겠다’고 이야기한 기사를 읽었다. 웃기기도 했다.”

이용문 “밀가루 음식, 패스트 푸드 등은 조절하는 게 맞다. 해야 할 일이지만 일부러 참는 게 괴롭긴 하다.”

조승재 “음식 관리도 중요하지만 부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선수들이 각자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다. 몸 관리도 실력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하는데, 부상을 당하지 않기도 어렵다. 우슈란 훈련부터가 늘 극한으로 하기 때문이다. 부상 관리란 딜레마와 같다. 쉴 수도 없고, 더 할 수도 없다. 간단한 부상에도 충분히 쉬어야 하지만, 선수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부상이 가장 큰 어려움일 듯하다.”

서희주 “다쳐서 훈련을 하지 못할 때가 아무래도 제일 힘든 것 같다. 몸이 조금만 무거워져도 부상 위험이 커져서, 부상과 체중 관리가 결국 통하는 얘기기도 하다. 나도 살이 조금이라도 쪘다고 느껴지면 웨이트트레이닝룸으로 달려가 러닝머신을 뛴다. 꾸준히 관리하는 게 힘들지만 국가대표는 감당해야 한다.”

-우슈 투로는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동작들의 연속이다. 각자 국가대표가 되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설명을 해볼 수 있을까.

서희주 “6년 전 2012년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아킬레스건이 파열됐었다. 지금도 십자인대가 문제지만, 아킬레스건은 더 복귀하기가 힘들다고들 해 선수생활의 위기를 맞은 셈이었다. 하지만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너무 나가고 싶었다. 1년간 새벽 수영, 오전 오후 웨이트 트레이닝 등 재활 기간을 거쳤다. 다치고 나니 오히려 내가 우슈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께서는 늘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만족하지 않으셨는데, 그 해에는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셨다.”

이용문 “선수촌에 19세 때 들어왔다. 계속 운동을 했지만 매년 더 힘들어진다. 점점 더 힘들어진다.”

조승재 “항상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노력하는 선수가 보이면 ‘저 선수만큼은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다는 생각보다는, 항상 부족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도술을 하는 날은 칼의 관리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분리되는 부분마다의 무게와 비율을 신경쓰고, 각 부분의 무게를 따로 재서 최적의 무게도 조합해 본다. 하지만 이건 국가대표라면 누구나 하는 노력이다.”

이하성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면서, 끝이 없다고 느낀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노력이란 없는 것 같다.”

-우슈 투로가 국민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우슈 선수로서 우슈에 대한 사랑이 커졌으면 하는 마음일 테다. 성원해준 팬들에게 전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서희주 “기대하고 응원을 해 주셨는데 나는 결국 경기 출전을 포기했다. 아무리 부상 때문이라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죄송한 마음 뿐이다. 지금 목발을 짚고 있지만 많은 실망을 드린 만큼 빨리 수술하고 재활해서, 다음 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 드리고 싶다.”

이하성 “4년 전에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올해에도 좋은 성적을 낼 거란 기대를 많이 주셨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안 좋은 성적을 내서 죄송하다. 이하성은 좀더 성장하겠다. 실수를 분석하고 거듭 연습해서, 다음 경기 때에 좋은 성적으로 기대에 부응하겠다.”

이용문 “우슈를 많이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많이 알고 한국 대표팀을 응원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 감동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사랑과 관심이었다. 열심히 하면 관심을 가져 주신다는 생각에,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동 받은 만큼 계속 열심히 하겠다.”

조승재 “우슈에는 다양한 화려한 즐길 거리가 많다. 우슈는 타 종목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아니 우슈만의 매력들이 있다. 우슈의 매력을 아실 수 있도록 나부터 더 열심히 하겠다.”

4명과의 인터뷰는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엑스포홀 훈련장 옆의 공간에서 진행됐다. 4명은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다른 나라 선수들의 워밍업 장면을 지켜봤다. 대회를 마무리한 상황이지만, 다른 선수들의 연습 장면을 지켜볼 때에는 모두들 진지한 얼굴이 됐다. 경기장에서 양보 없이 겨뤘던 다른 나라 선수들이 이따금 다가와 악수를 건네거나 엄지를 치켜세우고 갔다. 선수들은 “10월에는 전국체전, 11월에는 미얀마 우슈 월드컵이 열린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이경원 기자, 사진=윤성호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