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강추위 속 아동의 ‘쉼터’…지역아동센터서 꿈 키우는 아이들

입력 2018-08-22 10:59
서울 영등포구의 구립푸르름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되는 파티셰 수업. 푸르름센터 제공

“집보다 시원한데 친구들도 있고, 좋아하는 놀이도 할 수 있어요! 다음 주에는 템플 스테이도 가요.”

3년째 영등포구의 구립푸르름지역아동센터에 다니고 있는 예린(12)이는 이 곳에서 더위도 식히고, 요리사의 꿈도 키운다. 방학 때 더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예린이는 요즘 오전 10시부터 저녁 식사 후인 오후 6시까지 이곳에 머문다. 1주에 한 번씩 파티셰 수업을 받을 때가 제일 좋다. 예린이는 “어서 요리사가 돼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지역 저소득층이나 다문화, 한부모, 맞벌이 가정의 아동을 돌본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9일 오후 5시, 센터에는 예린이를 비롯해 초등학생 26명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2~3학년 예닐곱명은 풍선으로 강아지 등 갖가지 모형을 만드는 풍선아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강아지 모양을 만들던 시우(8·여)는 “여기 오면 집보다 더 시원하고 언니들도 있어서 좋다”고 했다. 풍선을 불고, 빵빵한 풍선을 날아가지 않도록 잡아야 하는 풍선아트는 동적인 활동이었다. 이 시간동안 방안 에어컨의 온도는 23도에 맞춰져 있었다. 한쪽에선 선풍기와 공기청정기가 돌아갔다.

아이들은 센터가 문을 여는 오전 10시보다 일찍 온다. 특히 이번 여름은 이른 아침부터 푹푹 찌자 아이들은 센터로 한달음에 달려온다. 아이들이 센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생활복지사 선생님들도 돌아가면서 일찍 오기로 했다. 선생님이 미리 와서 에어컨을 틀어 놓으면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그동안 취약계층 아이들이 혹서기나 혹한기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노인 무더위쉼터만큼 아동을 위한 쉼터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지역 공공도서관 정도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주거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은 집에서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가 없다.

저녁식사 시간인 오후 5시30분이 다가오자 선생님들이 지도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질서 있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식사 후 디저트로 싱싱한 포도가 나왔다. 이곳에선 모두가 동네 언니, 오빠다. 학교에서는 조금 어려운 ‘2학년 언니’ ‘3학년 오빠’지만 센터에 오면 그냥 같이 밥 먹고 노는 사이가 된다. 젓가락질에 아직 서툰 저학년 동생들을 옆에서 자기 동생처럼 챙겨주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의 구립가재울지역아동센터에는 센터에 다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일반 아이들도 이용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쉼터는 들어서자마자 땀이 금방 마를 정도로 시원했다. 책도 구비돼있어 아이들이 시간을 때우기 좋지만 몰라서 찾아오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전국에 운영 중인 지역아동센터는 지난해 기준 4189곳이다. 무료로 운영되는 아동센터는 국비와 지방비를 지원받지만 예산은 넉넉하진 않다. 올해 지역아동센터 관련 예산(국비 기준)은 1541억7500만원, 센터당 월평균 약 500원을 지원받는 셈이다.

구청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구립 센터는 그나마 낫지만 정부 지원으로 어려워 후원이 필요한 곳들도 있다. 영등포구의 햇살가득지역아동센터는 민간 기업에서 운영비, 자원봉사자들의 재능기부 등 후원을 받고 있다. 박민하 시설장은 “급식교사를 둘 여력이 없어 학부모가 짬을 내 봉사를 해주고 있다”며 “아이들의 균형 있는 식단을 짤 급식교사를 둘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동센터는 초·중·고등학생이 모두 이용할 수 있지만 중·고교로 진학할수록 학생 중 센터를 안 오게 되는 경우도 많다. 센터는 가난한 아이들만 오는 곳이라는 시선 때문이다. 박 시설장은 “중·고교에 가면 부끄러운 마음에 친구들에게 ‘학원’을 간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채민정 시설장은 “고교생이 1명 있었는데 올해 센터를 그만뒀다”며 “사춘기 아이들이 거부감을 가지지 않도록 이름을 ‘아동센터’에서 ‘아동청소년센터’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