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김동연과 장하성 Ⅱ

입력 2018-08-21 17:00 수정 2018-08-21 17:00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3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경제를 잘 모른다.” VS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설전을 보고 있노라면 노무현정부 때 이헌재 경제 부총리와 386세대 정치인들 간의 갈등을 보는 듯하다. 이 부총리는 여당 소장파 의원들이 아파트 원가 공개를 추진하자 “386세대가 대학 때 저항운동을 하느라 경제를 못 배워 시장경제를 모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부글부글하던 386그룹은 이 부총리가 야인 시절 받았던 은행 자문료 문제를 언론에 흘리며 도덕성 시비를 걸었다. 386그룹과 사사건건 충돌하던 이 부총리는 취임 1년 만에 옷을 벗었다.

7월 신규 취업자 수가 5000명 늘어나는데 그쳤다는 보도를 보고 귀를 의심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달 30만명씩 늘어나던 취업자가 지난 2월부터 10만명대로 주저앉더니 급기야 5만명도 아니고 겨우 5000명 늘었단다. 올 상반기 자영업자 폐업이 10년 만에 가장 많았다는 소식과 지난달 300명 미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취업자 수가 8년 반 만에 처음으로 7만6000명 감소했다는 보도도 21일 나왔다. 상황이 이런 데도 장하성 정책실장은 “정부를 믿고 기다려달라”고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필요하면 경제정책 수정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문재인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빚은 고용참사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김 부총리는 사실 처음부터 소득주도 성장이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유승민 의원이 “부총리는 청문회 때부터 소득주도 성장보다는 사람 중심 투자라는 말을 주로 쓴다”고 했을 정도다. 그가 처음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경제 악영향을 언급하며 속도 조절론을 제기한 것은 지난 5월 15일 국민일보와 취임 1주년 인터뷰를 할 때였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분명히 고용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현장에서 수용 가능한지 고려해서 필요하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날 장 실장은 고위 당정청협의회에서 “전체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는 분명히 없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14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10.9% 인상한 8350원으로 결정하기 전에도 언성을 높이며 두자릿수 인상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고용에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2년 연속 급격하게 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2년 연속 최저임금 27% 인상으로 죽겠다는 현장 목소리에 침묵하는 장관들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에 나서고 경총이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이의신청을 하자 지난달 31일 국무회의가 끝난 뒤 이낙연 총리가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김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도 최저임금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재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2년 연속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려서 고용감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걱정됐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시장과 기업에 위축시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구걸’이란 소리까지 들어가며 기업들에 투자를 독려하고 규제를 풀어 경제를 살리려 하는데 최저임금을 또 다시 급격하게 올려서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운용에 부담이 크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최저임금을 재심의해서 조금이라도 조정되면 정부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항변했지만 재심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무 장관인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니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었을 터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한가구산업협동조합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 장관과 홍 장관 등은 이 자리에서 “크게 문제 될 것 없다” “잘 관리해 나가면 된다” “이제까지 재심한 적 없었다”며 재심을 반대했다고 한다. 홍 장관의 행보를 보면 정치인 출신답게 양면적이다. 그는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 관련 중소기업 긴급 간담회에서 중소기업 현장의 애로사항들을 듣고도 정작 비공개 국무회의에서는 중소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전달하기는커녕 반대 목소리를 쏟아냈다.

“임금이 너무 올라 걱정이 되지만 해외 경쟁력을 잃을까 우려돼 제품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 “중소제조업에서 편의점 등 서비스업종으로 인력이 빠져나가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날 홍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중소기업들은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을 존폐의 위기로 몰아간다고 하소연했다. 중소제조업 근로자와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일반서비스업 시급이 같아져 영세 중소기업에서 인력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 업체는 근로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중소제조업 부족 인원은 8만2000명(3.2%) 수준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 인상 영향은 1∼4인(51.8%) 등 5인 미만 사업장이 가장 크고 5∼9인(33.7%), 10∼29인(23.0%), 30∼99인(14.9%), 100∼299(11.6%), 300인 이상(4.2%) 등으로 추산된다. 홍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중소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제기한 문제를 정부부처와 국회에도 뜻을 전달하고 최대한 대책 마련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었다.

홍 장관은 이튿날인 지난달 17일 서울 동작구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소상공인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들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내년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으로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지만 소상공인들은 날로 높아지는 최저임금에 최소한의 소득도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며 “1년 남짓한 기간에 27%나 오른 최저임금으로 소상공인들은 물론 소상공인 업종에서 일하는 취약근로자들이 생계수단을 잃을 위험에 놓여 있다”고 성토했다. 홍 장관은 이 자리에서도 “서민경제에 돈이 돌 때까지 경기부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국무회의에 이런 의견을 전달하겠다”며 조만간 정부가 내놓을 정책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래놓고 국무회의에선 현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니 이율배반적이다. 이달 들어서도 홍 장관은 외식업 소상공인들이나 가구업계 등을 만나 현장의 애로점을 듣고 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6일 경기도 화성시 웰크론한텍을 방문해 청년내일채움공제 참여 우수기업 현장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 등 현장 얘기를 듣겠다며 지난 6월 18일부터 지난달 13일까지 전국 10곳에 현장노동청을 설치하고 나선 김영주 장관도 마찬가지다. 김 장관은 지난달 23일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청년 노동단체인 청년유니온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어 일주일 뒤인 지난달 30일에는 인천 인하대학교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원과 간담회를 열었다. 김 장관은 이들 간담회에서 “최근 고용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15∼65세 생산가능 인구가 8만명 가량 줄고, 조선·자동차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 등으로 제조업 취업자가 12만6000명 감소하는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며 “최저임금으로 고용이 감소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 ‘듣고 싶은 얘기’만 들었다. 듣기만 하고 국무회의에서 꿀먹은 벙어리로 앉아있거나 별 문제 없다고 영세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지 않을 거라면 장관들이 왜 현장을 돌아다니는지 의문이다.

-일자리정부라더니 대선 공신과 OB들로 청와대 일자리만 늘리나

고용 통계뿐 아니다. 각종 경제지표가 고꾸라지고 있는데 청와대만 장밋빛 전망 일색이다. 국민들과 시장이 볼 때는 현실에 귀막고 눈감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청와대 자영업 비서관 등을 신설하며 대선 캠프 출신 인사나 10년 전 노무현정부에서 일했던 OB(올드 보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청와대 일자리 대통령’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해 문재인정부가 일자리정부를 내세우며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입한 장관급 인사는 자신의 일자리를 위해 부위원장직을 내던지고 지난 6월 지방선거에 나갔다. 한술 더떠 여당은 고용 쇼크의 책임을 엉뚱하게 이명박·박근혜정부에 돌리고 있으니 한심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문제는 앞으로 고용 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소득주도 성장 등 현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결과에 직(職)을 건다는 결의로 임하라”며 김 부총리와 장 실장에 대한 유임의 뜻을 밝혔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386세대들의 공격에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나는 그만두면 되지만 나라 경제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관가에서는 김 부총리가 최근 몇 달 사이 부쩍 제 목소리를 내는데 대해 정치적으로 더 큰 야망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곁에서 지켜본 김 부총리는 ‘청계천 판잣집 소년가장 출신’이란 트레이드마크가 말해주듯 자신이 어렵게 자라온 탓에 힘든 사람들을 돕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고자 하는 열정이 누구보다 넘치는 사람이다. 참척의 고통을 겪은 그는 더 이상 세상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 진영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한·미 FTA 체결 때는 측근인 천정배 의원마저 단식농성에 돌입했지만 “찬반토론의 대상이 아니다”며 “나의 결정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밀어붙였다. 문 대통령이 반쪽 진영의 청구서를 뿌리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결기를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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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