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죽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

입력 2018-08-21 10:22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인 H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한강에 갔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돼 부모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평소 아버지와 학업 관련, 갈등이 심했다. 아버지는 회사 일이 바빠 자주 만나지도 못했지만 마주치면 성적 얘기 주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피하곤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직장을 명예퇴직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전보다 공부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졌다. H는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었다. 그날도 아버지와 심하게 야단을 맞고 한강으로 갔다.

H는 중학교 2학년 쯤부터 짜증이 많아졌다 욱하며 화를 참지 못했다. 부모는 사춘기라서 그려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H는 갈수록 매사 귀찮았다. 컴퓨터 게임, 핸드폰에만 매달려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곤 했다. 아버지의 성화에 책장에 앉아 보지만 집중이 안 되고 멍 때리고 있었다. 몇 달 전 부터는 잠을 이루기도 힘들고 잠을 못자니 피곤하고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힘들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지가 부족한 탓’이라며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마치 담벼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친구들에게도 죽고 싶다는 말을 하였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들어주질 않고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얘기를 들어주질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는 얼마 전 H가 쓰던 컴퓨터에서 ‘자살하는 법’이라는 검색을 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오히려 자극이 될까 봐 눈치를 보며 H와 대화를 해볼 엄두를 못 내고 넘어갔다.

H처럼 스스로 죽음을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낸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 자살’ 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또 죽음, 자살에 대한 대화를 진지하게 하면 오히려 해가 되거나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봐 두려워하여 대화 자체를 피한다. 심각하게 받아주면 자살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강해지고 기정사실화 될까봐 말하기를 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H와 같은 당사자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주변 사람의 지나친 배려에 따른 회피 행동이 자신의 감정을 무시해서 라고 느낀다.

자살은 청소년기 사망 원인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청소년기의 충동적인 특성을 생각할 때 ‘죽고 싶다’는 청소년의 말은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자살은 우울감의 심각성보다는 충동성에 의해 실행되는 경우가 많으니 평소 H처럼 충동적인 청소년 이라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울하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H의 엄마처럼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보아라,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식의 섣부른 조언은 자신을 더 내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H는 그냥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