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함께’ 시리즈가 달성한 전인미답의 쌍천만 흥행, 그 중심에는 배우 하정우(본명 김성훈·40)가 있었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장장 11개월을 그린매트 위에서 뛰고 구르고 검을 휘둘렀다. 그의 용기어린 도전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역사를 아로새기는 동력이 됐다.
하정우 본인에게도 이번 성공은 적잖은 의미를 남겼다. 이로써 그는 무려 세 편의 1000만 영화(‘암살’ ‘신과함께-죄와 벌’ ‘신과함께-인과 연’)를 배출한 주인공이 됐다. 그뿐 아니다. 국내 최연소로 ‘1억 배우’ 타이틀을 달았다. 송강호 황정민 오달수에 이은 역대 4번째 대기록. 동년배 배우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행보다.
‘신과함께’ 시리즈에서 하정우는 저승 삼차사의 리더 강림 역을 맡아 방대한 스토리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다. 극 중 1000년 전 과거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강림은 귀인 자홍(차태현) 수홍(김동욱) 형제의 저승 재판을 변호하는 한편 자신과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을 둘러싼 과거의 인연을 하나둘 더듬어 나간다.
“현실의 강림이 절제돼 있다면 1000년 전의 강림은 좀 더 드러나 있는 인물이에요. 2편이 전개되면서 조금씩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디자인부터 달랐어요. 1편에선 서 있는 동선이 많았다면 2편에선 앉아서 대사를 치는 장면이 많아요. 그러다 마지막에 자기반성을 하면서 용서를 구하죠. 그런 흐름에서 1편과 다른 지점이 있죠.”
1편 ‘신과함께-죄와 벌’(이하 ‘신과함께1’)이 시각특수효과(VFX)를 통해 구현한 화려한 볼거리와 가족애를 강조한 보편적 주제의식으로 1441만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2편 ‘신과함께-인과 연’(이하 ‘신과함께2’)은 보다 촘촘해진 스토리로 작품에 무게감을 더했다.
‘신과함께2’ 개봉 즈음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마주한 하정우는 “1편은 눈물이 쏟아지는 감정이라면 2편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정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선택했을 땐 2부의 힘이 더 컸다”고 털어놨다. 이어 “예상했던 것만큼 영화가 잘 나와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 이 정도의 완성도면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고 흡족해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김용화 감독과 얘기를 많이 했어요. 늘 문제는 1편이었어요. 과연 재미있을까, 더 재미있는 건 없을까, 더 말이 되는 건 없을까. 1편에서 감정선을 잘 끌고 가서 빌드업(구축)이 돼야 후반부 클라이맥스가 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했죠. 물론 그런 고민은 영화 찍을 때마다 늘 하지만요.”
하정우는 “1편은 김용화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나왔고, 진심이 통했다. 그로 인해 2편은 좀 더 자신감을 갖고 후반작업을 하신 것 같다. 보다 과감해지고 힘이 세진 부분이 있더라”면서 “전작 ‘미스터 고’(2013)의 경험을 토대로 큰 성장을 이루지 않으셨나 싶다. ‘미스터 고’가 ‘신과함께’를 떠받들고 있는 좋은 토양이 된 셈”이라고 했다.
“사실 ‘신과함께’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걸로 기억해요. 모험이라고. 하지만 ‘미스터 고’의 경험이 있었기에 김용화 감독은 뚝심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거예요.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까지 그 정도의 필모그래피를 쌓고 또 성장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그걸 해냈어요. 관객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죠.”
‘신과함께’ 시리즈는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정우는 “앞으로 이런 형태의 기획이 많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기획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다. ‘신과함께’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관심을 받은 건 이야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획만 잘하면 많은 한국 영화인들이 세계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싶어요. ‘신과함께’가 그런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내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통할 수 있는 거죠.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껴요. 감사한 일이죠. 한국이 아시아 영화의 중심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하정우는 올 초 ‘신과함께1’과 ‘1987’ 홍보 스케줄을 마무리한 이후 모처럼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하와이에 다녀왔고 3월 중순까지 전시회 준비를 했다. 곧바로 제16회 피렌체 한국영화제 참석 차 이탈리아로 출국했다가 내친 김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녔다.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피렌체 바르셀로나 런던까지.
“제 여행 스타일은 원래 한군데에서 벗어나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거예요. 근데 이번에는 배낭여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반기는 쉬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색다른 걸 해보자 싶었죠. TV에서 보던 관광코스를 다 갔어요. 한국 사람들이 알아보고 난리도 아니었죠. 악수 200번은 한 것 같아요. 안 하던 짓을 하니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타고난 워커홀릭 체질이라도 되는 걸까. 하정우는 또 다시 ‘열일’ 모드에 돌입한다. 김용화 감독이 제작하는 ‘백두산’(감독 이해준·김병서)부터 윤종빈 감독이 제작하는 공포스릴러 ‘클로젯’(감독 김광빈), 보스톤 국제 마라톤 대회 뒷이야기를 담은 ‘보스턴 1947’(감독 강제규)까지 연이어 출연한다.
하정우는 “다작(多作) 하면 소진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작품을 하면서 학습하고 연마하게 되는 부분이 엄청나게 크다. 그만큼 작품 해석 능력과 통찰력 또한 커진다. 작품은 가능한 한 많이 하는 게 좋지 않나 싶다”면서 “(배우가) 연기를 안 하면 뭐 하고 살겠나”라고 반문했다.
하반기에는 자신이 제작과 주연으로 참여한 ‘PMC’(감독 김병우) 개봉을 앞두고 있다.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에 이어 감독으로서 내놓는 세 번째 연출작도 준비 중이다. “관심사는 늘 다음 작품 준비하는 것”이라는 그이건만 결혼 계획은 아직 유효하단다. “(여자친구) 만나야죠. 조만간 결혼해야죠. 45살 전까진 할 거예요. 김용화 감독이 45살에 했거든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