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비서 성폭행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을 두고 예비 법조인 로스쿨 학생들이 성명서를 내고 강력 규탄했다. 로스쿨생들이 공개적으로 성명서를 내고 재판부를 비판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전국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연합은 19일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1심 판결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내고 “업무상위력에 의한 추행 및 간음의 구성요건을 기존 대법원 판결의 판시보다 엄격하게 해석한 근거에 대해 재판부는 합당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1998년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당시 재판부는 업무상위력등에 의한 추행에서 ‘위력’은 폭행·협박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었다. 때문에 이번 판결에서 피해자가 거부의사표시를 했던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인과 피해자 간 성적 관계에서 위력 행사가 수반되지 않았다는 판단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 심리 방식도 지적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성인지 감수성 기준을 현격히 하회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심리 초점을 위력 ‘행사’와 피해자의 자유의사 제압 여부로 옮겨 재판이 사실상 피고인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심리로 흘러가게 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판단한다는 명목하에 피해자의 평소 언행, 지인과 주고받은 메시지, 사건 발생 후 피해자의 대응과 태도, 나이, 학력, 결혼 여부 등 사실상 피해자 전 인격에 대한 광범위한 ‘품행 심판’을 진행했다고 꼬집은 것이다.
때문에 안 전 지사가 피해자에 전한 사과, 범행 사실을 잊으라고 말했던 메시지나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입장문, 평소 안 전 지사가 부하직원들을 고압적으로 대한 정황 등 유죄로 볼만한 증거들에 대한 심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당위와 현실을 혼동해 여성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는 맥락과 현실의 성별권력 구조를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전젠연은 또 “이번 사건은 입법 책임 소재가 불명한 비동의간음 처벌 문제가 아니다”라며 “폭행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강간, 강제추행과 별도로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를 둔 입법 취지와 위력의 개념·판단 기준을 고려한다면 안 전 지사의 죄책을 형법상 업무상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의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사안을 비동의간음죄 신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덧말은 그간 법원이 강력하게 주장해온 법해석 및 적용권한의 전속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방기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며 “합당하게 마련된 기존 법리와 대법원이 제시한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된 상식적 판단을 촉구한다”고 전했다.
뉴시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