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을 계기로 마련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린다.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남측 방문단은 20~22일(1회차 상봉) 북측 가족을 만나고, 북측 방문단은 24∼26일(2회차) 남측 가족을 만난다.
이산가족들은 20일 부터 2박3일간 단체상봉, 환영만찬, 개별상봉, 객실점심, 단체상봉, 작별상봉 및 공동점심 순으로 6차례에 걸쳐 11시간 동안 만남을 갖게 된다. 둘째 날인 21일 2시간의 개별상봉 후 1시간 동안 객실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남과 북의 가족이 객실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이번 상봉 행사가 처음이다.
◇ “딸 소식 듣고 꿈인가 했어. 임신한 줄도 몰랐거든”
유관식(89) 할아버지는 딸을 북쪽에 두고 온 이유를 묻자 “딸이 있는지 몰랐다”고 답했다. 피난 당시 부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때문에 회보서에 딸 유연옥(67)씨는 ‘유복자’라고 적혀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 낳은 자식을 뜻하는 말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언론과 인터뷰가 잡히자 유 할아버지는 재혼한 부인의 마음이 상할까 우려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해해줬다고 했다.
그렇게 얼굴도, 생사도, 하물며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부녀가 67년 만에 만난다. ‘유복자’로 살아왔던 딸에게 아빠는 결혼은 했는지, 애들은 몇이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 가장 기쁘다는 말도 더했다.
유 할아버지는 “(이상가족 상봉) 통지 온 거 보고 깜짝 놀랐다”며 “와, 내 딸이 태어났구나라는 생각에 이게 꿈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래 살다 보니 이런 기쁨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 “꿈에 그리던 동생 만났으니, 이제 운동 그만 하련다”
김항섭(92) 할아버지는 동생 김충섭(80)씨를 만난다. 김 할아버지는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고향은 황해도 황주인데 1.4후퇴 때 가족들을 북에 두고 사촌들과 함께 피난을 왔다고 했다. 당시 남자들은 보이는 대로 잡아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는 동생과의 만남이 성사됐다는 통보를 받은 후 “(동생 만나고 오면) 이제 운동 안할란다”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시절 사촌들은 이미 이산가족 상봉을 했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에게 동생이 살아있다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운동을 시작했다. 건강을 지켜야 생전 동생을 만날 수 있으니 계속해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길러왔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제 살아서 할 거 다 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소원이 곧 이뤄진다.
할아버지는 동생에게 줄 방한복을 준비했다고 했다. 지금 동생의 키나 체격을 모르기 때문에 안에 입을 옷들만 샀다고 했다. 피를 나눈 형제는 지금 서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머리 속에 그려보지도 못하고 있다.
◇ “생각하면 눈물만 나. 나는 내 아들 딱 알아볼 수 있어”
이기순(91) 할아버지는 두 살 때 생이별한 아들 리강선(75)씨를 만난다. 전쟁통에 갓 태어난 아들을 떼어놓은 아빠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글썽였다.
이 할아버지는 아들이 어디 살았는지만 물어보면 단박에 자신의 아들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아들이 맞다면 여러 말 하지 않아도 하나만 물어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취재진이 어떤 질문이냐고 묻자 “너도 술 좋아하느냐고 물어봐야지”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할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아들도 술을 좋아할 것 같다는 추측을 하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 할아버지가 준비한 선물이 조금 특별해보였다. 아빠는 아들에게 줄 햄을 샀다. 그동안 따뜻한 밥 한 번 지어주지 못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걸까.
공동취재단,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