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일희일비 김학범호, 말레이시아가 준 교훈

입력 2018-08-20 07:30
대한민국 김학범 감독이 17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를 상대로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불과 이틀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쏟아졌던 찬사는 고스란히 비난이 되어 돌아왔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U-23 축구대표팀 얘기다.

한국은 지난 15일 조별예선 E조 1차전에서 바레인을 6대0으로 대파했다. 완벽한 경기였다. 비록 수비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을 드러내긴 했으나 골키퍼 조현우가 기대했던 만큼 눈부신 선방을 보여줬다. 특히 황의조의 활약이 빛났다. 아시안게임으로 무대를 옮겨왔어도 이번 시즌 일본 J리그에서 9골을 몰아쳤던 쾌조의 골 감각은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43분 만에 해트트릭을 완성하며 논란 속에도 와일드카드로 선발된 이유를 스스로 증명했다.

황의조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김 감독과 황의조는 과거 성남FC에서 감독과 간판 공격수로 함께 발을 맞춘 바 있다. 많은 이들이 그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김 감독이 의도적으로 병역 혜택을 선물해 주기 위해 황의조를 발탁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 왔다. 김 감독과 황의조는 대회 시작부터 ‘인맥 축구’ ‘의리축구’ 라는 논란 속에 대중들의 따가운 시선들과 먼저 싸워 왔다. 도 넘은 비난에 본인 역시 마음이 무거울 터였다.

하지만 황의조는 그들의 냉소에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응답했다. 바레인전에서 보인 결정력과 동료들과의 호흡을 통해 와일드카드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입증했다. 황의조는 김 감독의 가장 자신 있는 카드였다. 과거 김 감독 지휘 아래 ‘성남의 왕’으로 군림 했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현재 황의조를 향한 인맥 논란은 완전히 사라졌고, 대중들과 언론도 곧바로 등을 돌려 빼어난 활약을 보인 그의 손을 잡아 줬다.

시작이 좋았다. 이번 조별예선 상대들 중 가장 까다로운 상대로 꼽혔던 바레인을 꺾었고, 그보다 더 강한 적이었던 김 감독을 향한 대중들의 강한 불신 역시 날려버렸다. 에이스 손흥민은 벤치에서 팀의 승리를 바라보며 체력 안배를 했고, 조현우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보였던 활약 그대로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김 감독에겐 ‘학범슨’이란 찬사가 잇따랐다. ‘학범슨’은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자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성의 스승인 알렉스 퍼거슨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바레인전만 놓고 봤을 때 김 감독의 선수 선발과 기용은 모두 성공,그의 지도력 역시 재조명됐다.

모두가 한국은 역시 아시아 무대에서 만큼은 영원한 우승후보이자 강호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가운데 아시안게임 축구 2연패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불과 삼일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대한민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대한민국 황의조가 따라가는 골을 넣은 뒤 공을 향해 가고 있다. AP뉴시스

◆ 김학범의 만용, 전술적 오판?

말레이시아와 지난 17일 맞붙었던 2차전은 사실상 E조의 1위 결정전이었다. 김 감독은 피파랭킹 171위의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파격적인 로테이션 시스템을 꺼내 들었다. 예고한 바였다. 김 감독은 “주전은 없다. 전 선수들이 고루 출전할 것”이라며 월드컵과 달리 17일 동안 7~8경기를 치르는 굉장히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로테이션은 필수적이라고 꾸준히 강조해 왔다. 회복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에 따라 필수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에 따라 이틀 전에 바레인의 골문을 겨냥했던 선수들 대부분이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김 감독은 와일드카드로 데려온 조현우를 포함해 로테이션을 이유로 1차전 선발명단에서 6명을 교체하는 여유를 부렸다. 역대 전적에서도 7승1무1패로 일방적인 우세를 보이는 말레이시아였기에 모두가 바레인전과 같은 대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1대2 패배. 월드컵 독일전 승리 때와 정반대 의미의 충격이었다. 말레이시아는 속도를 살린 짜임새 있는 빠른 역습으로 한국을 괴롭혔다. 풀백들이 공을 점유했을 때 적극적이고 빠르게 전진하며 번번이 빈틈을 노렸다. 신체 조건이 좋지 않음에도 한발 더 뛰며 한국 수비진과 맞섰다.

아시안게임 시작부터 지적되던 수비불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 감독 스리백의 중심이었던 김민재 역시 상대의 적극적인 역습 속도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빌드업 과정에서 패스 미스를 비롯한 여러 실수가 많이 나왔다. 황현수 역시 실망스러웠다. 송범근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전반 5분 만에 골을 내줬다. 국제 대회가 처음인 19~22세의 어린 선수들이 중원을 구성했던 것 역시 큰 문제였다. 조직적 측면에서 드러난 문제는 급격한 선수단 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말레이시아의 11번 샤파위 빈 라시드는 지난 키르키즈스탄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상대로도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며 대부분의 위협적인 장면에 관여했다. 첫 번째 골은 한국 수비진의 실책에 따른 행운의 득점이었다 해도, 전반 추가시간엔 황현수를 속도 경합에서 이겨내며 빠른 슈팅으로 직접 득점을 기록했다.

말레이시아의 활발한 오른쪽 측면 공격을 막지 못했다. 전방에서 볼을 미리 차단하지 못한 조직적 문제 역시 드러났다. 사실 한국을 상대로한 말레이시아의 공격 루트는 지난 키르키즈스탄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빠른 발을 가진 라시드는 번번이 오른쪽으로 활발한 측면 공격을 시도했다. 같은 패를 들고 나온 그들에게 똑같이 당했다.

결국 패인은 ‘방심’이었다. 16강 진출을 확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일한 마음에 로테이션을 가동했던 것이 발목을 잡았다. 말레이시아와 키르키즈스탄을 쉽게 봤기 때문이다. 만용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김 감독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로테이션을 너무 일찍 사용한 것 같다. 나의 판단 착오였다”고 자신의 오판을 인정했다. 말레이시아를 전술과 로테이션의 실험 대상으로 삼으며 한 걸음 쉬어갈 작정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다음 키르키즈스탄을 상대론 전력으로 뛰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토너먼트가 아닌 조별예선에서부터 일찍이 고비가 찾아왔다.

황희찬이 말레이시아 수비진을 상대로 크로스를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 황희찬과 송범근, 고개를 들어라

김 감독의 오판과 함께 선발 공격수로 출전했던 황희찬과 골키퍼 송범근 역시 많은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생긴 프로선수로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준 이상 당연한 일이다. 이날 황희찬은 부지런한 움직임을 가져갔지만 어떠한 소득도 올리지 못했다. 그의 돌파는 말레이시아 수비진들에게 번번이 막혔고 슈팅의 정확도 또한 아쉬움이 남았다. 동료 공격수 황의조와의 호흡도 좋지 못했으며 문전 상황에서 세밀함 역시 떨어졌다.

황희찬은 경기가 끝난 뒤 공식 인터뷰에서 “많이 아쉬웠다. 이른 시간에 실점하고 나서 상대가 수비적으로 나와서 힘든 경기를 했다”며 “패스 타이밍도 서로 늦었고 세밀한 움직임도 아쉬웠다. 반성을 많이 해야 한다”고 자책했다.

부진한 경기력에 이어 그라운드 외적 문제도 불거졌다. 심판진과 말레이시아 선수들과도 악수를 나누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과를 떠나 경기가 끝나면 서로에게 악수를 건네며 예를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송범근은 황현수와의 충돌로 공을 흘리며 어이없는 선제골을 허용했다. 프로에서 나올 수 없는 치명적인 골이었다. 특히 그는 실책 후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수비수에게 불만을 토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날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조현우의 부재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대표팀 골키퍼 선배 김병지는 “송범근한테 점수를 줄 수 없는 수준”이라면서 “선방 하나 없었고 실책성으로 두 골을 다 먹었다”며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한국은 송범근의 실책으로 경기 시작 5분 만에 예상치 못한 실점을 허용하며 시종일관 말레이시아의 공격에 끌려가야 했다. 경험이 없는 선수들인 만큼 급한 마음에 패스미스와 같은 작은 실수들 역시 잦았다. 황희찬과 송범근은 선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최악의 하루를 보내게 됐다.

이번 김학범호만 보더라도 국가대표 경기라는 것이 찬사와 비난을 넘나드는 외줄타기와 같다. 때로는 비난의 중심에 선 역적이 되기도, 때로는 경기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 되기도 한다. 세계 최고의 선수로 대표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 또한 실수를 한다. 황희찬과 송범근 역시 자신의 실책에 대해 곱씹되 스스로 자책할 필요는 없다. 황희찬은 여전히 한국 축구를 짊어질 차세대 스트라이커고, 송범근 역시 K리그를 선도하고 있는 전북의 주전 골키퍼다.

국가대표로 나선 이상 국민들에게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따라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펼쳤을 때 따라오는 비판은 당연하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슴에 새긴 태극마크의 무게다. 황희찬과 송범근 역시 그 막중한 무게감을 깨닫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말레이시아전 패배가 준 교훈은 분명하다. 한국이 독일에게, 말레이시아가 한국에게 보여줬듯 축구에서는 절대강자도, 100%의 승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금메달을 목에 거는 그 순간까지 어떠한 방심도, 만용도 없어야 한다.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 말레이시아전 패배가 지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선수들에게 독이 아닌 약이 되길 바란다. 황의조가 그랬듯, 앞으로의 활약이 자신들을 겨냥한 대중의 냉소에 가장 확실히 응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