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대박 감사드려요”
한 유튜버는 자신이 올린 ‘남사친(남자 사람친구)의 나쁜손 시리즈’라는 제목의 영상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12일 기준 조회수 29만여 회를 기록하고 있는 이 영상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젤리형 장난감인 ‘액체괴물’(슬라임)을 만지작 거리는 모습이 담겨있다. 영상에는 액체괴물을 만지작거리는 모습과 함께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거나 직접적으로 성추행하는 내용의 자막이 나온다. “가슴을 만졌다” “손으로 허벅지를 만지며 더듬었다” 등 이 주된 내용이다.
◆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
액체괴물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아이들은 실제로 액체괴물을 가지고 놀기도 하지만 유튜브의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액체괴물을 접하기도 한다. 액체괴물을 만드는 영상, 인기 있는 액체괴물 장난감을 소개하는 영상 등 종류도 다양하다. 나아가 부모와 함께 액체괴물을 집에서 만들기도 한다. 액체괴물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셈이다. 9살 초등학생 자녀를 둔 A씨는 “주말이 되면 유튜브의 액체괴물 영상을 보고 아이와 함께 만들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이들이 ‘나쁜’ 액체괴물 콘텐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게시물이 많다. 이러한 게시물에 대해 유튜브는 ‘부적절한 콘텐츠’로 영상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액체괴물 콘텐츠의 경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영상이다보니 유튜브에서는 별다른 제재없이 모든 사람이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유튜브에서 액체괴물 콘텐츠를 보다가 ‘남사친의 나쁜손 시리즈’와 같은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유튜브는 해당 주제의 콘텐츠를 클릭할 경우 비슷한 콘텐츠까지 오른쪽 하단 화면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영상의 제목에는 ‘수위 많이 높아요’ ‘어린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세요’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영상의 나이 제한은 없다. 애플리케이션(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의 한국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의 세대별 사용 현황을 보면, 10대는 전 세대 중 유튜브를 가장 오래 사용한 세대였다. 세대별로 사용시간이 10대는 76억 분, 20대는 53억 분, 30대는 42억 분, 40대는 38억 분, 50대는 51억 분이었다. 특히 10대는 카카오톡 24억 분, 네이버 16억 분, 페이스북 11억 분 등 주요 앱을 합친 것보다 유튜브를 더 오래 이용했다.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만큼 부적절한 콘텐츠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조회수 높이려고…액체괴물 악용하는 ‘유튜버들’
액체괴물 영상에 부적절한 내용의 자막 등을 추가하는 이유는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만큼 광고 수익이 높아진다. 유튜브가 생산자 입장에서 다른 SNS에 비해 강점을 가지는 부분은 바로 ‘직접 수입을 준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페이스북 등은 팔로워 수를 늘리고 인지도를 쌓아 이를 토대로 강연, 광고, 모델 등을 통해 수입 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유튜브는 상업적인 활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수익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유튜버의 길로 들어선 이유다.
그 결과 유튜브의 콘텐츠는 점점 다양해지고 완성도도 높아지면서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선순환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동시에 유튜브의 문제점들도 부각되고 있다. 조회수를 높이고,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선정적인 게시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 자극적인 내용을 다룬 콘텐츠들이 증가하고 있다. 액체괴물 시리즈를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관련 영상 약 3만 개가 검색된다. 이중 ‘나쁜손 남친시리즈’ ‘변태 남사친 시리즈’ ‘감금당했던 시리즈’ ‘자살 시리즈’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시리즈들이 거짓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액체괴물 남사친 시리즈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는 한 네티즌의 ‘이게 다 진짜냐. 거짓말로 지어낸 것 아니냐’란 질문에 “거짓말 아니다.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저만 아는 거겠죠. 조회수 대박 감사드려요”라고 답했다.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사실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시급한 대책마련…‘이미 아이들은 다 알고있다’
이미 아이들은 상당수 ‘나쁜’ 액체괴물 시리즈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한 네티즌은 “이제 유튜브에 자살시도만 쳐도 나오는 게 액체괴물 시리즈”라며 “자살이랑 아무 관련 없는 내용인 액체괴물이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튜버가 자극적인 텍스트와 무관한, 아이들이 쉽게 접하는 액체괴물 영상을 사용하는 것은 유튜브의 제재 망을 벗어나기 위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다른 네티즌은 “많은 초등학생들이 ‘액체괴물 시리즈’를 시청한다. 제일 심각한 것은 자살, 왕따, 자해, 학교, 가정폭력 이런 얘기를 하면서 액체괴물을 만지는 영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학생들은 이런 영상을 보면 힐링 된다고 하더라. 진짜 충격받았다”라고 말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그러나 마땅한 대책이 현재로선 없다. 유튜브의 존리 구글코리아 대표는 2017년 국정감사 당시 ‘유튜브 내의 성인물 및 폭력 콘텐츠 유통’에 대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완벽한 대응은 어렵다”고 답했다. 유튜브 업로드가 1분당 500시간 분량인 만큼, 유통되는 콘텐츠의 양이 많아 완벽한 대처가 어렵다는 뜻이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뾰족한 수는 없다.
박형중 변호사는 “액체괴물 영상이 직접 자해하는 영상이나 성추행하는 영상이라면 바로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상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유튜브가 현실적으로 완벽히 제재를 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앞으로 제도적으로 유튜브, 네이버, 아프리카방송 등의 플랫폼 등을 제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발달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분명히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파급효과가 크고 또한 제2차 3차 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박재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