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로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김 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주창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현재, 한국당 내부에서도 “뚜렷한 지향점은 보이지 않고 기존 한국당 색채만 짙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한국당의 새로운 가치 정립을 강조했다. 보수정당이 낡은 가치를 끌어안고 있으면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분석이었다. 김 위원장이 취임 초부터 꺼내든 ‘국가주의’는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상징하는 어젠다였다.
당내에서는 국가주의 어젠다가 일반 국민에게 큰 설득력을 주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유기준 의원은 지난 비대위 중진 연석회의에서 “국가주의라는 말은 지나치게 거대담론만 부르고, 현안에 대한 답변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 당직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보다 임팩트가 약하다는 평가가 있다”고 전했다.
당 밖에서는 국가주의 어젠다가 편의적으로 사용되면서 한국당의 구태의연한 색깔과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당 가치와 좌표를 재정립하는 소위 위원장에 국정교과서 도입을 찬성한 뉴라이트 성향의 홍성걸 교수를 임명했다. 김 비대위원장 본인도 광복절을 앞두고 건국절 관련 포럼 및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보수 세력이 강조해온 건국절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 도입과 건국절 제정 등의 주장 자체가 국가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정부를 국가주의로 비판하면서도 국가주의적 색채가 짙은 행보를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국가주의 프레임 동력은 떨어지고 기존 한국당의 보수적 색채만 강화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박스권에 갖힌 당 지지율도 김 위원장의 비전을 어둡게 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전국 성인 1천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한국당 지지율은 11%로 8월 첫째 주와 변동이 없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섰음에도 컨벤션 효과는커녕, 북한 석탄 이슈와 김경수 경남지사 소환 등 야권에 호재인 사안에 따른 반사이익도 보지 못한다는 평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와 반성이 없다는 점이 한국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당에 덧씌워진 ‘국정농단 세력’ 낙인이 당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 중진 의원은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문제를 뭉개고 가려 한다. 그러면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어떤 계기로든 탄핵 문제를 정리하고 가야 한다”며 “탄핵심판론은 6·13 지방선거에서도 통했고 한국당은 참패했다. 반성이 없으면 탄핵 프레임은 총선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탄핵은 역사가들이 정리해야 할 문제’라며 한 발 빼는 모양새다.
비대위 관계자는 아직 비대위가 출범 초기인 만큼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혁신 작업을 진행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핵심 당직자는 “지금의 한국당은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메뉴로는 안 된다. 된장찌개처럼 시간을 두고 지긋이 끓여 나가야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의도연구원 관계자도 “아직 혁신 작업이 본격화되지 않은 만큼 여론조사를 진행할 생각이 없다”며 “성과를 낸 다음에 국민에게 평가 받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