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덧칠만 했으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인 양 판매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가수 조영남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이수영)는 17일 “조씨의 사기 혐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던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미술작품은 화투를 소재로 하는데 이는 조영남 고유의 아이디어”라며 “조수는 조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 보조”라고 규정했다.
또 “미술사적으로도 도제 교육의 일환으로 조수를 두고 제작을 보조하게 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보조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하는 이상 이를 범죄라고 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이어 “작품 구매자들은 구매 동기로 여러 사정을 고려하는 점을 볼 때 작가가 직접 만들었는지 여부가 구매 결정에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구매자들의 주관적 동기가 모두 같지 않은 만큼 조씨에게 보조자 사용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2011년 1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화가들에게 그림을 대신 그리게 한 후 자신은 가벼운 덧칠 작업만 했다. 그는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17명에게 총 21점을 판매, 1억5300만원을 챙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1심에서는 “작업에 참여한 화가들이 단순한 ‘조수’가 아닌 ‘독자적 작가’”라며 조씨에게 유죄를 선고했었다.
조씨는 선고 직후 “재판부가 현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한 판단을 했다. 경의를 표한다”며 “이번 사건으로 그림을 더 진지하게 그릴 수 있게 돼 좋았다”고 밝혔다.
이재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