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가 한 고등학교에 다니지 못 하도록 하는 ‘상피제’가 도입된다. 고등학교에서 성적 조작과 시험문제 유출 등의 문제가 반복되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의 유명 사립고교 보직 부장이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해 딸들이 문·이과에서 각각 전교 1등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교육부는 17일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방안과 고등학교 교육 혁신 방향을 발표하면서 “고교 교사는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배치하지 않도록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농산어촌 등 학교가 적어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게 불가피한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의 각종 평가와 관련한 업무에 참여하지 못 하도록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했다.
부모가 사립학교 교사인 경우에는 부모를 같은 학교법인 내 다른 학교로 보내거나 공립학교 교사와 1대1로 자리를 바꾸는 방안, 기간제교사로 대체하는 방안 등을 시·도 교육청이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원은 1005명이고, 부모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자녀는 1050명이다. 2360개 고교 가운데 560개교(23.7%)에서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미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곳도 있다. 경기·세종·대구·울산 등 4개 시·도는 부모가 교사로 일하는 학교에 자녀가 배정되면 부모를 다른 학교로 전근시킨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 3월부터 자녀가 재학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원은 반드시 다른 학교로 전보 신청을 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고등학생을 각 학교에 배정할 때 부모가 교사로 있어서 학생이 특정 학교 기피 신청을 하거나, 자녀가 재학 중이라는 이유로 교사가 전근을 신청하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강제 조항은 아니다.
상피제 도입은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회의에서 사실상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가 교육청에 상피제를 권고하면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인사 규정을 고쳐 내년 3월 1일부터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
상피제가 반드시 공정한 것만은 아니다.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교사 자녀라는 이유로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등 부차적인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한편 교육부는 고등학교 내 평가관리실을 별도로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시험지 유출 등을 막기 위해 모든 평가관리실에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현재 시험지 보관 시설에 CCTV가 설치된 고등학교는 전국 2363개 고교 중 1100개(47%)인 것으로 조사됐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