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생이별 부부 은행나무, 70년 만에 소식 주고받아

입력 2018-08-17 11:04
아내 나무인 황해도 연안 은행나무. 문화재청 제공

북한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 호남중학교 교정. 이곳엔 수령 800년이 넘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암나무)가 있다. 북한 천연기념물 제135호 ‘연안 은행나무’로 지정돼 관리 되고 있는 이 나무는 고려 때부터 생과부 신세다. 원래 암수 은행나무가 금슬 좋게 뿌리 내리고 있었으나 어느 날 홍수가 크게 나 반려 은행나무(수나무)가 남쪽으로 떠내려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남편 나무인 강화도 불음도 은행나무.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강화군, 한국문화재재단, (사)섬 연구소와 공동으로 천연기념물 제304호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 민속행사를 17일 오전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 현지에서 개최했다. 이 강화 불음도 은행나무는 가슴높이 줄기 둘레 9m, 밑동 둘레 9.8m, 키 24m로 풍채가 좋다. 바로 황해도 연안의 은행나무와 부부의 연을 맺은 그 나무였다고 한다. 800여 년 전 홍수 때 뿌리째 떠내려온 걸 볼음도 어민들이 건져다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부부 은행나무의 생이별을 안타까워한 양측 주민들은 같은 날을 정해 함께 제를 지냈다. 언제부터 시작된 풍습인지 모르지만, 남북이 분단되기 전까지는 양측 주민들이 서로 연락해 음력 정월 그믐에 맞춰 행사를 지냈다. 수 백년 이어진 이 행사는 그러나 1948년 남북이 분단이 되면서 중단이 되고 말았다.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각종 교류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60년간 서로의 소식을 몰랐던 부부 은행나무도 감격의 ‘원격 상봉’을 한다. 오랜 세월 서로 떨어져 있었던 은행나무 부부의 아픔을 달래고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남과 북의 주민들이 함께 기원해왔던 은행나무 행사를 문화재청이 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행사 일정은 은행나무 부부 이야기를 토대로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인 음력 7월 7일(8월 17일)에 맞췄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춘향가’ 이수자인 박애리 씨의 사회로 평화의 시 낭송, 마당놀이, 태평성대 등이 이어졌다. 한국화가 신은미 작가가 아쟁 산조에 맞춰 북한 암나무를 기리는 수묵화 그리기 행사도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