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내놓은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중3부터 적용)은 학생들이 짊어지고 있는 과도한 학습 부담이나 학부모에게 가중되는 사교육비 고통을 덜어주는 방안과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다. 미래 인재를 키우는 비전도 없었다. 문재인정부의 교육 개혁은 말잔치에 불과했다.
새로운 내용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로 뽑는 인원을 소폭 늘리도록 대학을 압박하기로 했다는 정도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이를 ‘퇴행’이라 평한다. 이번 개편안은 ①강력해지는 수능 ②뒤로 물린 고교 혁신 ③찔끔 손댄 학생부 ④사교육 불패 신화 계속 등으로 요약 가능하다.
①강력해지는 수능
이번 대입 개편 과정에서 수능은 드라마틱한 부침을 겪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는 대선 공약을 걸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고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주장해 온 김 부총리가 부임하자, 수능 성적은 대입 전형요소에서 유명무실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주요 대학들이 수능 변별력 하락을 이유로 수능 성적 위주 전형을 대폭 낮추거나 아예 없앨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정부는 수능 절대평가 공약을 이번 개편안에서 공식 폐기했다. 나아가 전국 4년제 대학이 수능 성적으로 30% 이상 뽑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수시모집에서 이월되는 인원까지 포함한 실질 비율은 35% 안팎으로 예상된다. 말이 권고지 재정 지원 등과 연계했으므로 강제나 다름없다.
‘30% 이상’ 정책은 과거로의 회귀다. 교육부는 지난 10여년 동안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다. 학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감소를 명분으로 대학들을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대학들도 우수 학생 선점에는 정시보다 수시 모집이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수능 위주 선발 비율은 매년 줄어들었고 22.7%(현재 고2가 치르는 2020학년도 정시 모집 비율)까지 떨어졌다. 문재인정부가 정시 비율이 30%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놓은 것이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도 ‘없던 일’이 됐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되, 지나치게 최저기준을 빡빡하게 두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 역시 대선 공약 파기다. 최저기준이란 대학들이 수시모집 최종 합격의 조건으로 설정해 놓은 수능 등급을 말한다. ‘국어 수학 탐구의 등급 합이 5 이하’ 이런 식으로 설정한다. 예컨대 논술 전형에 지원해 글을 잘 썼어도 수능에서 국어 2등급, 수학 2등급, 탐구 2등급을 받아 등급 합이 6이면 이 전형에서 최종 탈락한다. 최저기준 유지는 수능의 입지를 유지하는 조치다. 최저기준이 없다면 수시 모집 일정에 따라 수능 응시자가 대폭 줄어들 수 있다. 수시에 최종 합격하면 수능을 볼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수능 준비는 한층 까다롭게 만들었다. EBS 연계율이 70%에서 50%로 낮췄다. 교사 집단이 요구하기도 했지만 사교육 업계의 숙원이기도 했다. EBS 교재에 활용된 지문의 주제나 소재 요지와 비슷한 지문을 다른 책에서 발췌해 내는 간접연계도 확대한다. 간접연계는 영어 지문을 달달 외워 시험을 풀지 못하도록 영어 영역에서 활용해 왔으나 전 과목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수험생 입장에선 EBS만으로 70점 이상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아니다. EBS 교재를 무시하기도 어려워 이중고에 시달릴 전망이다.
수능 범위와 과목도 줄이지 못했다. ‘수학과 과학의 성취수준은 세계 최고지만 흥미도는 세계 최저’ ‘월화수목금금금인 공부 기계’ ‘아프리카 빈국보다 불행한 아이들’ 한국 학생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들이다. 그래서 교육계는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지식의 총량을 줄이고 학생 주도형 토론 수업과 그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새 교육과정(2015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됐다.
이번 대입 개편은 새 교육과정 취지에 맞게 대입 제도를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교육부는 수학의 기하와 과학Ⅱ를 수능에서 빼려고 했다. 수능 범위를 적정화해 학습 부담을 줄여주면서 동시에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강화하려는 이유였다. 그러나 수학·과학계가 국가경쟁력 하락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교육계 일각에선 수학·과학계를 향해 ‘과목 이기주의’ ‘밥그릇 지키기’라고 날을 세우고 교육부를 엄호했지만 김상곤 교육부는 백기를 들었다. 결국 기하와 과학Ⅱ가 수능 과목으로 확정됐고 부담은 고스란히 학부모와 수험생 몫이 됐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