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판매하는 개인사업자 김모(36)씨는 지난달 11일 낯선 남자에게 메일 한 통을 받았다. 필리핀 마닐라의 한 미션스쿨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소개한 남자는 “학교 기념행사 증정품용으로 커피세트 1500만원 어치를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이후 카카오톡 닉네임 ‘HAPPY전도사’로 연락한 뒤 “행사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가격 흥정도 하지 않고 하루 만에 구매를 결정했다.
며칠 뒤 남자가 보내온 은행 영수증엔 김씨의 영문 이름, 계좌,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1만9000달러(약 2147만원)가 입금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남자는 돈이 3일 뒤에 통장에 입금될 것이라고 했고 해외거래가 처음이었던 A씨는 아무 의심 없이 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배송일이 빠듯해 상자 등 배송에 필요한 물품 300만원 어치는 자비로 구입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로부터 2980달러(약 336만원)를 물류회사에 입금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김씨가 학교에 커피를 기부하는 형식으로 보내야 관세를 면제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필리핀에어라인에서 받았다는 ‘항공 화물 설명서’도 첨부해 메일을 보냈다. ‘동일 제품을 다량으로 통관할 경우 관세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정식 수입절차를 진행해야 하지만 종교·선교 용품으로 하면 대사관 공증 절차를 거쳐 면세 제품으로 통관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17일 “필리핀에서 보낸 돈은 3일 후에 도착하는데 한국에서 보내면 바로 확인된다는 점이 미심쩍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제품 금액과 배송비가 입금될 때까지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하자 남자는 “학교 측에서 주문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렇게 거래가 무산된 뒤 김씨가 포털에 해당 학교를 검색해보니 동일한 수법으로 당할 뻔 했다는 글이 있었다. 김씨는 “허위 영수증, 물류비 선입금 요구 등 모든 과정이 똑같았다”면서 “작은 제조업체의 경우 금액이 크고 지속거래가 가능하다는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이라고 말했다. A씨는 조만간 이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할 계획이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