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망한 서로마제국과 달리 동로마제국은 천년의 세월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1453년 강성한 오스만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동로마제국을 멸망시켰다.
오스만투르크는 이후 콘스탄티노플의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고 제국의 중심으로 삼았고, 지중해 일대와 북아프리카 아랍지역 그리고 동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오스만투르크는 한때 고구려와 연합했으리라 추정되는 돌궐족이 세운 나라다.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에 의해 망해 중앙아시아로 밀려난 돌궐은 이후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오스만투르크 대제국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터키가 우리나라를 형제 국가로 부르는 이유가 이런 고대사에 깃들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산업혁명이 시작된 유럽에 점점 밀리다가 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영토의 대부분을 빼앗기고 국가적 존재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나라를 지키고 지금의 국가, 터키를 만든 군부의 장교가 ‘무스타파 케말파샤 아타튀르크’이다. 당시 케말파샤를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 즉 군부의 청년 장교들은 처절하게 과거를 반성하며 낡은 이슬람 전통과 봉건주의를 버리고 터키가 세속화된 공화국으로 거듭나길 바랐다.
그래서 일부다처제 금지, 유럽식의 법률제도 도입, 태양력 사용, 이슬람 종교의 정치 개입 금지를 천명하고 심지어 문자까지 알파벳 식으로 바꾸었다.
케말파샤는 독신으로 살면서 조국을 위해 일하다가 죽었으며 지금도 터키에서 국부로 추앙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이 존경하는 롤모델이었다.
이후 근대화한 터키에서 군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차례나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서 세속주의와 공화정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부가 현실정치에 개입했다.
문화적 전통은 이슬람이었으나 정치는 철저하게 서방을 지향, 유럽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했다. 군사적으로 나토의 일원이 되어 소련에 맞서 냉전기를 지탱했고 중동에서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군사 기지를 제공하고 서방과 미국의 편에 섰다.
그러나 유럽은 터키가 이렇게 계속 구애를 하는데도 유로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인구 8000만의 거대 이슬람 국가를 수용하기에는 부담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소련 해체 이후 동유럽 국가들도 유로존에 가입하였지만 터키는 아니었다. 유럽의 외면과 군부의 독주와 부패에 염증을 느끼던 터키 국민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정치인이 지금의 터키 대통령인 ‘에르도안’이다.
정의개발당을 창당하고 2003년에 집권에 성공한 이후 이슬람 전통을 복원하고 군부의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과거 제국의 향수를 자극했다. 터키의 국민들은 환호했고 이전보다 에드로안 집권 이후 경제 사정도 나아졌다.
국민들은 과거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영화를 다시 살릴 기대를 갖고 국가 자존심을 회복하리라 열광했다. 거침이 없던 에드로안 대통령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위기는 2016년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다.
군부 세력을 몰아내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에르도안에게 아들의 부패 스캔들과 같은 추문이 생기자 에르도안의 재이슬람화와 권위주의적 독재에 반대하던 대도시의 지식인들, 경제적 기득권 세력이 군부와 손잡고 에르도안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러나 민심은 여전히 에르도안의 편이었다. 터키 국민들 다수는 에르도안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낸 것이다. 반 에르도안 쿠데타가 시도 즉시 에르도안의 영상을 본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 나왔고, 쿠데타는 실패하였다. 에르도안은 대대적인 반대파 숙청과 더불어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부패한 군부 세력에게 굴복하지 않은 카리스마를 가진 이슬람 전통의 수호자 술탄 에르도안의 이미지는 터키의 일반 서민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터키는 합법적인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독재 체재로 치달았다.
에르도안의 터키는 시리아 내전이나 이란 제재 문제에 있어 미국과 다른 입장을 보이고 급속도로 러시아와 우호적인 방향으로 관계 개선을 하는 등의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에르도안 집권 후 터키 경제가 좋아진 것은 미국과 유럽의 금융 위기 이후 충족해진 유동성을 바탕으로 대부분 외화를 저금리로 단기간에 차입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터키 경제의 기초 체력이 개선되고 성장 잠재력이 커진 덕분에 얻은 성과가 아니었던 셈이다.
터키는 중동과 유럽의 길목에서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국가이고 인구 8000만여 명의 대국이다.
하지만 아직 세계질서는 기축통화인 미 달러와 세계 무역 항로를 지키는 미국의 해군력이 장악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터키가 구금 중인 미국인 목사 석방 문제로 미국과 대립을 하자 이를 빌미로 한 초강대국 미국의 관세 부과 한방에 터키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인도 등도 난리가 났다. 터키에 돈을 많이 빌려준 유럽 일부 국가들도 난망한 상태이다.
과연 터키는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술탄 에르도안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까? 세계는 지금 술탄 에르도안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고 있다.
에르도안이 장기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부패한 과거 군부 정권과 달리 일반 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개선시킨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이런 정치적 과신이 되레 터키 경제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기선완 교수는
1981년 연세의대 입학하여 격동의 80년대를 대학에서 보내고 1987년 연세의대를 졸업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레지턴트를 마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이후 건양대학병원 신설 초기부터 10년 간 근무한 후 인천성모병원을 거쳐 가톨릭관동대학 국제성모병원 개원에 크게 기여했다. 지역사회 정신보건과 중독정신의학이 그의 전공 분야이다. 최근 특이하게 2년 간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한국 의료의 해외 진출을 위해 애쓰다가 귀국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