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지도 대잔치가 벌어졌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특별전 ‘지도예찬-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전이다. 지도를 주제로 한 최초의 대규모 종합전시다. 20여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260여점(국보 1건, 보물 9건 포함)이 나왔다.
전시는 마치 ‘19세기 지도 천재 김정호 신화’는 버리라고 외치는 듯하다. 김정호는 잘 알려진 대로 백두산에 8번 오르는 등 지도 제작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국가 기밀인 지리 정보를 유출했다며 흥선대원군의 노여움을 사 옥에 갇히는 ‘비극적 영웅’이 된 것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하지만 ‘김정호 탄압설’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을 폄훼하려고 만든 스토리라는 게 학계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지도 강국’ 조선을 보여주는 상징은 개국 10년 만인 1402년 이회 등이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이다. ‘혼일강리’는 전 세계를 뜻한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을 담고 있는 중국 수입 ‘혼일강리도’에는 없던 조선과 일본을 추가해 제작함으로써 “동아시아 최초의 진정한 세계 지도”라는 평가를 듣는다. 이처럼 조선은 개국 초부터 국가적으로 지도 제작과 편찬을 장려했다.
조선 전기 때 만든 전국 지도인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地圖·국보 제248호)’는 전국 팔도의 각 고을 이름이 오방색으로 분류돼 통치를 효과적으로 하려는 지혜가 보인다.
지도는 곧 국토 경계의 표시이다. 1770년 신경준이 영조의 명을 받아 제작해 바친 ‘동국여지도’ 속 강원도 고을 지도첩인 ‘관동방여(關東方輿)’에는 울릉도와 함께 우산도(독도)가 분명하게 표시돼 있다. ‘일본여도(日本輿圖)’는 경계 너머 국제 정세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전라도 여러 고을의 해안 군사시설을 부각시킨 ‘호남도서(湖南島嶼)’, 서울 방어의 요충지 강화도에 대한 ‘강화지도’에선 국토 수호의 의지가 읽힌다.
이처럼 지도는 국방 외교 행정 등 통치 행위를 위해 관에서 제작했을 뿐 아니라 후기로 가면서는 민간에서도 제작됐다. 조선 후기 지도의 전범이 된 ‘민간인 정상기’의 ‘동국대지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1861년)를 세상에 내놓기 100년도 훨씬 전에 탄생했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17세기 선비 화가 공재 윤두서가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地圖)’ 등 지도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지도는 일상의 삶과도 함께했다. 조선시대 부자 도시의 상징인 ‘평양성도’는 태평성대를 희망하는 백성의 로망이 담긴 듯 한 폭의 회화 같다. 한양에서 충청도 음성까지의 노정만 그린 내비게이션 같은 지도, 휴대하기 편하게 작은 크기로 만든 지도책과 이를 담는 포갑, 소매에 넣을 수 있는 수진본(袖珍本) 지도 등 그야말로 ‘지도의 나라 조선’을 느낄 수 있는 전시다. 10월 28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