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노예가 아닙니다” … 서울아산병원 ‘태움’에 이어 ‘수면양말’ 강요 논란

입력 2018-08-15 16:52
게티이미지뱅크

‘태움’(간호사 사이에서 발생하는 직장내 괴롭힘)과 ‘면접 갑질’로 논란을 겪었던 서울아산병원이 이번에는 야간 진료 간호사에게 신발 대신 수면 양말 착용을 강요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행동하는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는 14일 페이스북에 ‘간호사는 노예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최씨가 제보받은 아산병원 내부 직원게시판 글에 따르면 아산병원 측은 간호사들에게 신발 대신 수면 양말만 착용하고 야간 진료를 보라고 요구했다. 비교적 비싼 값을 내고 내원하는 1~2인실 환자들이 밤에 간호사의 발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구성이 약한 양말을 신고 돌아다니면 간호사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직원게시판에 글을 올린 A씨는 “땀이 차도록 뛰어다니는 간호사의 발은 보호받지 못하고. 날카로운 물체에 손상이라도 되면 간호사의 인생은 누가 책임 지는 거냐”고 적었다. 또 다른 작성자 B씨는 “나이트 라운딩 시 소리에 예민한 1~2인실 환자들이 컴플레인하면 신발을 손수 벗어 수면양말에 슈커버(신발 겉에 씌우는 덧신)까지 덮어 쓰고 병실에 들어가라는 관리자의 인계를 받았을 때 전문직 간호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고 썼다.



최원영 간호사 페이스북

최씨는 “물론 아픈 환자들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다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몸이 아픈 환자들은 힘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은 그러면 안 된다”며 “고객만족, 환자유치, 병원수익에 눈이 멀어 병원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적었다.

이어 “병원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바닥에 혈액이나 소변이 흘러 있기도 하고 깨진 유리앰플 조각과 주사바늘이 굴러다니는 건 예삿일이다. 그런 곳을 수면양말만 신고 다니며 일하라니요. 간호사 숨소리가 거슬린다고 하면 숨도 참고 일하라고 할 겁니까”라며 “간호사는 노예가 아닙니다.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7월 초에 간호간병통합 서비스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중증 환자들이 호소하는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직접 낸 아이디어 중 하나”라며 “간호사들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지 테스트하기 위해 수면양말 등을 직접 구입한 것은 맞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다” “내부 게시판 글은 회의에 직접 참여한 해당 병동 간호사들이 아닌, 소문을 들은 다른 병동 간호사들이 내용을 오해한 채 올린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씨는 보도로 병원 측의 해명을 접하고 나서 추가 대응에 나섰다. 최씨는 간호사 대나무숲 페이지를 관리하는 운영자에게 (수면양말 착용 강요를 고발하는)글을 내리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협박하는 메시지가 빗발쳤다고 전했다. 또 병원이 아닌 간호사들이 직접 제시한 아이디어였다는 해명에 대해서도 “내부 직원들 반발로 무산된 걸 마치 자기들(병원 측)이 알아서 멈춘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2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신입 간호사로 근무하던 박모(27)씨가 투신한 사건이 있었다. 박씨가 지인들에게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했다고 알려졌으나 경찰은 ‘태움’과 박씨의 사망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지난 7월에는 신입 간호사를 뽑는 면접자리에서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투신사건을 언급하며 “우리 병원 신입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버틸거냐”고 질문해 논란이 됐다.

▶ 다음은 최원영 간호사 관련 게시글의 전문.

< 간호사는 노예가 아닙니다 >
얼마 전 충격적인 제보를 받았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들에게 신발이 아닌 수면양말을 신고 일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당연히 아산병원 내부의 직원게시판은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 엽기적인 지시를 내린 이유는 ‘간호사의 발소리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 없다’는 어느 환자의 민원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환자분은 늦은 밤 병실과 복도를 바쁘게 오가는 간호사의 발소리가 거슬렸나봅니다.
물론 아픈 환자들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다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힘들면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환자는, 아픈 사람들은 그럴 수 있지만 병원은 그러면 안 됩니다.
고객만족, 환자유치, 병원 수익에 눈이 멀어 병원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모두가 잠들 시간에 간호사는 왜 잠도 안 자고 환자들 사이를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입원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병원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바닥에 혈액이나 소변이 흘러 있기도 하고, 깨진 유리앰플 조각과 주사바늘이 굴러다니는 건 예삿일입니다.
그런 곳을 수면양말만 신고 다니며 일하라니요...간호사 숨소리가 거슬린다고 하면 숨도 참고 일하라고 할 겁니까?
간호사는 노예가 아닙니다. 간호사는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간호사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입니다.
아산병원같은 대형병원에 취직하고 싶어 줄을 선 간호사들은 많겠죠. 그러니까 매년 수백명의 간호사들이 사직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런 갑질을 일삼는 거구요...
면접갑질 논란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수면양말까지, 아산병원의 갑질...대체 그 끝은 어디일까요?

김혜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