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신문 때 재판부 어땠길래…” 김지은이 ‘안희정 무죄’ 예견한 이유

입력 2018-08-15 06:57 수정 2018-08-15 09:08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자 피해자 김지은씨는 주저앉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같은 결과를 예견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지난달 2일 비공개로 진행된 2차 공판 때 진행됐던 증인신문 때문이다. 당시 재판부는 ‘정조를 허용했냐’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식의 질문을 해 김씨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14일 변호사를 통해 1장짜리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는 “어둡고 추웠던 긴 밤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침묵과 거짓으로 진실을 짓밟으려던 사람들과 피고인의 반성 없는 태도에 지독히도 아프고 괴로웠다”는 심경이 담겼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생존해 있는 건 미약한 나와 함께해준 분들이 있어서다. 숱한 외압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목소리를 내주셨고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한 김씨는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할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씨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달 6일 비공개로 진행된 공판에서 재판부의 증인신문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씨는 오전 10시 법원에 출석해 다음날 1시45분까지 증인신문을 받았다. 이날 오후 11시30분까지 검찰의 주신문과 피고인 안 전 지사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이어졌고 이후 검찰의 재신문과 재판부의 직권신문이 다음날 1시45분까지 계속됐다. 이처럼 장시간 이어진 증인신문은 김씨가 당일 재판에서 모두 끝마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사건의 성격을 고려해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재판 전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고 증인신문 과정에서 피고인석에 앉은 안 전 지사의 모습을 볼 수 없게 차폐막도 설치해 피해자 증인과 피고인을 철저히 분리하는 배려까지 했다. 휴정시간엔 증인과 피고인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씨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김씨가 신뢰할 수 있는 관계자가 신문 내내 동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재판 내용이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는 중앙일보에 “당시 재판부가 김씨에게 정조를 허용했자고 말해 피해자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었다”며 “재판부가 ‘피해자다움’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16시간의 심문에서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식으로 다그치듯 질문해 김씨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2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도 “마누라 비서라는 처음 듣는 별명까지 붙여 사건을 불륜으로 몰아갔다. 나는 단 한 번도 피고인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며 “수행비서는 지사 업무에 불편함이 없게 하는 역할이다. 나를 성실하다고 칭찬하던 동료들이 그런 성실과 열의를 애정인양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도망치면 되지 않는냐고 하는데 위력이 있는 관계에서 그럴 수 있겠나”라며 “지사 사람들에게 낙인찍히면 어디도 못 간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평판조회가 중요한 정치권에서 지사 말 한마디로 직장을 못 구할 수 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김씨는 재판부에 “이 사건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피고인과 다른 권력자들은 괴물이 될 것”이라며 “나는 이제 일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만이 나를 살게 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조병구 부장판사가 ‘피고인은 무죄’라는 주문을 읽자 김씨는 표정이 굳어졌다. 이후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법정을 나섰다. 판결문을 익는 동안 안 전 지사는 눈을 감았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