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은 1994년 한국 최초의 성희롱 판결이 있었던 23년 전보다 훨씬 후퇴했다”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은 안희정(53) 전 충남지사에게 14일에 열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여성단체가 검찰에 즉각 항소를 요구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는 14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성폭력을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기까지 수백 번 고민하기를 반복할 피해자들에게 침묵에 대한 강요가 될 것”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재판부의 무죄 판결은 성폭력 사건의 강력한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부정하고 여전히 업무상 위력에 대한 판단을 엄격하고 좁게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와 피고인의 위치에서 피고인의 권세와 지위 영향력이 행사돼 피해자가 저항을 해야 할지 생계를 유지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던 상황에 이르게 된 기본적인 상황을 법원은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며 “성폭력이 일어난 그때, 그 공간에서 유형력 행사에만 초점을 맞춘 좁은 해석과 판단은 강간에 대해 성적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상황을 두루 살피는 최근 대법원 판례의 흐름조차 따라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즉각 항소해야 한다”며 “우리의 대응은 항소심, 대법원까지 계속될 것”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이 향후 ‘미투 운동’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는 “권세나 지위를 가진 사람이 소위 말하는 갑질을 성적으로 휘두르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격”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투 운동 관련 첫 번째 주요 재판에서 주된 쟁점인 ‘업무상 위력의 존재’를 부인하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업무상 위력에 관한 죄를 규정한 법률의 보호법익이 있지 않나”며 “조직 안에서 권력 있는 자가 마음껏 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과 다름없어서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투 운동도 굉장히 위축시킬 것이고 이 판결을 기다린 많은 사람을 좌절시킨 꼴”라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이번 판결은 1994년 한국 최초의 성희롱 판결이 있었던 23년 전보다 훨씬 후퇴했다”며 “재판부가 했던 끔찍하고 비현실적인 이 판결이 우리 사회의 더 나쁘고 불평등한 부분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원은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