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비서를 성폭행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판결과 동시에 방청석 곳곳에서는 고함 섞인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 안 전 지사 지지자들은 “힘내시라”는 응원을 건네기도 했다.
안 전 지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쯤 법정에 등장했다. 지난 공판 때와 같은 정장과 하얀색 셔츠 차림이었다. 같은 시간 김지은(33)씨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변호인 옆에 자리했다.
선고 공판은 10시35분부터 진행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114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판결문을 요약한 뒤 안 전 지사의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와 함께 방청석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방청객 중 한 명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이 나라에는 정의가 없다”고 소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선고를 지켜본 여성단체 회원들은 눈물을 쏟기도 했다.
공판이 끝난 뒤 안 전 지사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변호인들과 약 5분간 대화를 나눴고 곧바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현장에 있던 일부 안 전 지사 지지자들은 “지사님 힘내시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앞에서는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여성단체 회원과 안 전 지사의 지지자 간에 작은 몸싸움이 일어나는 등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성단체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이들은 “성폭력 사건의 강력한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신빙성을 부정하고 여전히 업무상 위력에 대한 판단을 엄격하고 좁게 해석했다”며 “검찰은 즉각 항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부는 “증거 조사 결과에 따를 때 피고인이 도청 내에서 피해자에게 위력을 일반적으로 항시 행사하고 남용하는 등 이른바 위력의 존재감 자체로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억압했다고 볼만한 증거는 부족하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 전 지사가 김씨를 5차례 강제추행한 혐의에 대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르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또 현행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에 따라 안 전 지사를 유죄로 볼 수 없다는 시각을 내비치며 “국민적 합의에 의해 구성된 입법 행위를 통해 정비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사법적 판단은 현행법을 엄격히 해석해 결론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이자 정무비서였던 김씨를 상대로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결심공판에서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안 전 지사가 수행비서의 취약성을 이용했다. 피고인이 지위 권세를 이용해 성적 접촉을 요구할 때 피해자는 거부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며 안 전 지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