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4차 재정추계를 토대로 국민연금 제도개혁 움직임이 한창이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와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가 오는 17일 공청회를 열고 ‘국민연금 고갈시점’ 등을 근거로 제도개혁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를 앞두고 언론에서 각종 제도개선 방안이 쏟아지고 있고, 확정되지 않은 방안만 놓고도 온갖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아예 “국민연금을 없애라”는 극단적인 반응도 적잖다.
‘차라리 국민연금을 없애는 게 낫다’는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사학연금 간 수급액 격차에 대한 불만,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에 대한 불안, 국민연금만으로 노후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국민연금 제도가 존속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이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을 없애고 민간회사에 각자의 형편에 따라 사적연금을 드는 게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일까. 연금 전문가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국민연금이 사적연금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부유층 전업주부들이 의무가입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재테크 차원에서 임의가입제도를 통해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게 ‘허튼 짓’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의 국민연금 가입은 국민연금 재원 자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가입자 모두에게 유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이 사적연금보다 유리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왜일까? 국민연금연구원·보험연구원 등 연금 관련 연구원의 각종 보고서를 종합해 ‘국민연금이 사적연금보다 유리한 5가지 이유’를 정리했다.
① 물가 상승률 반영해 수급액 올라가는 국민연금
가장 큰 이유는 ‘국민연금 수급액에는 물가상승률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매년 물가상승률만큼 연금액이 오른다. 즉 국민연금을 받게 될 시점의 미래 가치가 반영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가치 기준으로 다달이 국민연금 120만원씩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A씨(45)가 20년 뒤인 65세 때 실제 받게 되는 금액은 120만원보다 큰 돈이다. 매년 2.0%씩만 물가가 오른다고 해도 200만원 가까운 금액을 연금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사적연금 중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연금액을 올려주는 상품은 없다. 계약할 때 약정한 금액만 준다. A씨가 사적연금을 들어 120만원씩 받기로 했다면 20년 뒤 그에게 주어지는 연금액은 월 120만원이다. 20년 뒤 120만원의 가치가 지금의 80만원 수준 밖에 안 된다고 해도 A씨의 사적연금 수급액은 약정대로만 지급된다.
② 낸 돈 보다 더 많이 받게 설계된 국민연금…수익비 1.2~4배
많은 가입자들이 잘 모르는 게 국민연금은 ‘낸 돈 보다 더 받는다’는 사실이다. 국민연금 ‘수익비’(내가 낸 돈을 돌려받게 되는 배율)는 평균 1.5배다. 소득에 따라 1.2배~4배에 이른다.
수익비는 미세한 차이가 있긴 하나 소득이 적을수록 높게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보험료를 적게 내는 경우 수익비가 높다. 소득이 적을수록 낸 보험료보다 많은 연금을 받게 된다. 수익비가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낸 돈 보다 더 받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사적연금은 수익비가 높지 않다. 국민연금처럼 가입자 수가 많지 않고, 재정 투입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운용수익률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수익비가 1이 안되는 경우도 적잖다. 리스크가 크다는 뜻이다.
③ 국민연금보다 재정안정성이 높은 사적연금은 없다
국민연금 논란은 ‘기금 고갈 시점’에 대한 추계에서 비롯된 게 크다. 추계 방법에 따라 기금 고갈 시점은 2054~2060년 사이를 오간다. 기금이 완전히 사라질 최악의 가능성을 가정하고, 이런 상황에 대비해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재정 추계를 하는 것인데 오히려 제도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국민연금보다 재정안정성이 높은 사적연금은 없다. 국민연금 기금액은 지난해 말 기준 512조원에 이른다. 국민연금보다 기금액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적연금 또한 없다.
사적연금은 회사가 망하면 낸 돈만큼 돌려받는 정도의 보상 외에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국가가 망하기 전’에는 ‘재정 잔고=0’가 되는 일은 생기지 않도록 설계됐다. 국가 차원에서 5년 단위로 장기 재정추계를 해서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다. 앞으로 최소 25~30년 뒤의 일을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에 대한 대비 여력이 충분하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면 국가 재정이 투입될 여지도 있다.
수익률 측면에서도 사적연금보다 국민연금이 더 안정적이다. 국민연금은 대체로 안정 자산에 투자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기금 운용 수익률은 7.28%였다. 매년 차이는 있지만 3~5%대 수익률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④ 국민연금은 사망할 때까지 받는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 제도가 시작된 1988년 가입해 10년 동안 보험료를 내고 만 60세 이후 보험료를 받고 있는 B씨(75)의 경우 앞으로 15년을 더 산다고 해도 계속해서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B씨는 10년 동안 보험료를 내고 30년 동안 연금을 받는 것이다. 오래 살수록 유리하다.
사적연금은 연금 수급 시한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B씨가 가입한 사적연금의 경우 60세부터 받기 시작해 80세까지 시한이 정해져있는데 B씨가 90세까지 산다면 10년 동안 사적연금 공백기가 생긴다.
⑤ 국민연금은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
국민연금에는 ‘유족연금’이라는 게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숨지기 5년 전부터 최소 3년 동안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경우 가입자의 유가족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예상 수급액이 100만원인 C씨가 맞벌이를 하는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남겨두고 숨진 경우, C씨네는 배우자와 자녀가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다. C씨 가입기간이 10년 미만인 경우 C씨의 아내는 ‘100만원×40%’를 유족연금으로 받는다. C씨의 아내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경우에도 국민연금과 유족연금 모두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유족연금 수급액이 줄어든다. 미성년 자녀가 수급하는 경우에는 만 25세 미만까지 받을 수 있다.
배우자와 25세 미만 자녀만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입자의 부모, 손자녀, 조부모까지 받을 수 있다. 가입기간에 따라 유족연금 지급액이 달라지는데 가입기간이 길수록 유리하다. 가입 기간이 10년~20년 미만이면 유족연금 금액은 50%로, 20년 이상이면 60%로 올라간다.
국민연금이 사적연금보다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는 데 이견을 달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제도에 대한 불신, 국가에 대한 불신이 오랫동안 계속된 탓이 크다.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과 안정성에 대한 설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