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韓축구 사령탑설’ 키케 플로레스를 향한 시선

입력 2018-08-13 07:00
키케 플로레스 감독. 뉴시스

한국 축구대표팀의 차기 사령탑으로 여러 스페인 감독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스페인 21세 이하(U-21)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은 알베르트 셀라데스를 시작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었던 페르난도 이에로가 대한축구협회와 접촉설에 오르내렸다. 축구계에서 김판곤 위원장이 스페인, 포르투갈 출신 지도자들이 후보로 꼽았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다.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 인물 중에는 스페인 출신 감독인 키케 플로레스가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신임 감독 선임 과정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확정되는 내용이 있으면 공개적으로 발표할 것”이라며 어떤 언급도 피하고 있다. 하지만 플로레스의 한국 대표팀 부임설은 스페인 현지 매체에서 연일 보고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루이스 스콜라리와 카를로스 케이로스,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등 앞서 거론됐던 전 세계 이름난 명장들과 비교 했을 때 이름값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인물이다.

스페인 현지매체 ‘아스’는 10일(한국시간) “대한축구협회가 플로레스 감독에게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 때까지 팀의 지휘봉을 맡길 것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플로레스 감독은 수일 내 답변을 전할 예정이다. 공식 선임이전까지 비공개로 일관하겠다는 축구협회 방침에 따라 김판곤 위원장의 현재 행보는 알 수 없다. 유럽으로 출장을 나갔다는 것이 유일하게 확실한 소식이다. 하지만 스페인 현지 매체 보도나 한국 접촉설에 대해 별다른 부인을 하지 않는 플로레스 감독을 봤을때 정황상 김판곤 위원장은 플로레스 감독을 만나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난 것이 유력해 보인다.

정몽규 회장은 최근 협회에 40억원을 기부했다. 협회는 해당 기부금을 정몽회장의 뜻에 따라 새로 선임하는 국가대표팀 감독의 연봉을 지원하거나 유소년 축구를 활성화 하는데 쓸 전망이다. 당초 유능한 감독들을 선임하는데 중국처럼 거액 연봉을 보장할 수 없는 다는 것이 큰 제한점이 됐다. 이름난 명장들이 4년씩이나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 회장의 기부로 걸림돌이 됐던 그들의 높은 연봉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덜게 됐다.

이강인 인스타그램 캡처.

◆ 중위권 전문 감독 ‘언더독의 반란’ 일으킬 준비 됐다

플로레스 감독이 이끌었던 팀들을 살펴보면 중위권 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2001년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팀을 지휘하는 것으로 감독직을 시작했다. 이후 헤타페와 발렌시아, 벤피카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을 이끌었다. 벤피카 부임시절 포르투갈 리그를 우승한 것과 아틀레티코를 이끌고 UEFA 유로파리그를 우승시켰던 경험이 있다.

이후엔 아시아에서 알 아흘리와 알 아인을 지도했고 2015년 7월부터 1년 간 왓포드 사령탑으로 재직한 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에스파뇰을 지도했다. 유럽축구와 아시아축구 모두 경험하며 세계축구의 다양한 흐름들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루이스 엔리케, 미첼과 함께 유력 스페인 감독 후보로도 거론됐다.

중위권 팀들을 전전하며 제한된 재정에도 나름 준수한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 역시 한국축구와 잘 맞을 것으로 보인다. 2015-2016시즌엔 그해 승격팀이던 왓포드를 이끌고 프리미어리그 13위로 마감함과 동시에 FA컵 준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놀라운 성과였다. 한국은 아시아무대에서만큼은 영원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강호다. 하지만 월드컵과 같은 세계무대에서 만큼은 현실적으로 32강 조별예선 통과를 목표로 두고 싸워야하는 약체다.

플로레스 감독은 스페인 출신이지만 스페인식 축구로 대표되는 짧은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 ‘티키타카’(tiqui-taca)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이끌었던 팀들에선 중앙에서 빌드업 과정을 거쳐 주도권을 잡기보단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될 때 빠른 속도로 한방을 노리는 역습 축구를 선호했다.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이 있다기보다 선수단 성격에 맞춰 최고의 전술을 끌어내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축구 역시 수비조직을 탄탄히 하는 체력축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현재 물망에 오른 후보들 중에 가장 적합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능한 어린 선수들을 키워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 역시 플로레스의 굉장히 큰 장점이다. 그가 아틀레티코 감독 시절(2009~2011) 영입한 필리페 루이스와 디에고 고딘, 가비 페르난데스는 수년간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팀의 전설로 남게 됐다. 가장 최근 감독으로 있었던 에스파뇰에서 역시 마크 로카나 헤라르드 모레노 같은 어린 선수들을 꾸준히 기용함과 동시에 마르틴 데미첼리스와 다비드 로페즈 같은 베테랑 선수들 역시 적절히 활용했다. 젊은 선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줄 아는 감독이다.

한국 역시 이승우와 이강인, 백승호, 정우영 등 어린 나이임에도 미래 세대를 책임질만한 유능한 선수들이 떠오르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이후 기성용과 구자철이 국가대표 은퇴를 결정하면서 한국 대표팀은 무게 중심이 젊은 선수로 급속 이동했다. 한국 대표팀은 그라운드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줄 ‘리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고참 선수가 부재한 현재 한국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적임자다.

◆ 플로레스의 체력 축구, 한국과 닮았다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가 유로2008, 2010남아공 월드컵, 유로2012 메이저 대회 3연패를 달성하며 현대축구를 지배하고, 클럽축구에서도 FC바르셀로나가 독주할 시절에도 플로레스 감독은 점유율 축구를 따라가지 않았다. 점유율 축구는 스페인의 신념과도 같았지만 스페인 출신의 플로레스는 그와 같은 흐름을 따라가길 거부했다.

특히나 그의 에스파뇰 시절이 대표적이다. 2016-2017시즌 에스파뇰은 다른 프리메라리가 팀들과 비교해 봤을 때 볼 점유율 19위(44.9%)를 기록했다. 하지만 득점은 리그 10위, 순위는 8위에 올랐다. 이렇듯 그는 점유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잔뜩 웅크려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역습으로 측면을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실 중위권 팀들만 맡아왔던 감독의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 아틀레티코 역시 그의 부임시절엔 현재와 같이 유럽 챔피언스리그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 트로피를 두고 싸울 정도의 강호는 아니었다. 수비적인 전술에 대한 연구와 발전은 감독 시절 내내 중위권 팀들의 지휘봉만 잡았었던 플로레스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플로레스의 주 포메이션은 4-4-2다. 4-4-2년 역사상 가장 완벽한 형태의 전술이라고 평가받았지만 한동안 전술적 주류에선 확연히 밀려나 있었다. 포백을 기본으로 하는 다른 유기적인 4선 계열에 비해 별다른 이점을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 밀집형태의 수비 강화가 더해진데다 수비라인의 지그재그 배치, 풀백과 인사이드 미드필더의 간격 조정 등으로 단점을 보완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플로레스와 그레고리고 만사노의 아틀레티코 감독 바톤을 이어받아 4-4-2를 다시 한번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발돋움시켰다. 아틀레티코가 유럽에서 수비축구의 대명사로 떠오를 수 있게된건 시메오네 감독의 공이 99%지만, 1%정도는 전임 감독인 플로레스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만사노는 6개월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플로레스 감독의 4-4-2는 굉장한 활동량과 체력을 강조한다. 앞 선 두 명의 스트라이커는 상대 수비진을 계속해서 전방 압박해야하며 중원에 나설 미드필더 역시 상대 3선을 견제해야하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두 명의 미드필더들은 상대 윙어들의 측면공격을 막아내야 함과 동시에 역습 기회시 협력 수비를 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그간 한국의 메인 전술이었던 손흥민과 황희찬을 앞세운 4-4-2 포메이션과도 상당히 비슷하다. 주 공격루트가 측면이라는 것 역시 그렇다. 플로레스의 전술은 한국과 잘 맞는 옷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만큼 자신의 축구 철학을 녹여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로 치르게 될 국제 메이저대회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플로레스가 온다면 한국 대표팀이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희소식이다.

◆ A대표팀 감독 경험은 전무, 하지만…

플로레스 감독은 2001년 지도자 생활 이래 한 번도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또한 9차례 프로 클럽 감독을 역임하는 동안 세 시즌 이상 한 팀에 머물렀던 적이 없을 정도로 자주 팀을 옮긴 감독판 ‘저니맨’이다. 그가 좋은 감독임이 분명함에도 많은 팬들이 우려하는 점 역시 이 부분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만 보더라도 클럽 감독으로 지도자 커리어 대부분을 보냈거나 그마저도 굉장히 적은 감독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으로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은 벨기에의 사령탑을 잡아 역사상 최고 순위인 3위를 이끌어냈다. 즐라트코 달리치(크로아티아·2위),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러시아), 야네 안데르센(스웨덴·이상 8강) 또한 대표팀 감독으로선 초짜였다. 대표팀 감독이 없다는 점이 단순한 경험의 부재하곤 큰 연관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강인이 11일(한국 시간) 발렌시아 1군 무대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는 등 향후 10년을 책임질 만한 유망주들이 터져나오며 벌써부터 국내 축구팬들의 기대는 2022 카타르 월드컵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만큼 플로레스 감독 역시 벌써부터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팬들의 기대만큼 플로레스는 현재의 성적과 선수단의 세대교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타깃으로 평가된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